'한강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때로는 직역이 오히려 오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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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옮긴 세계적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20일 화상 연결로 한국 독자들과 만나 번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현대카드 유튜브 생중계 캡처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옮긴 세계적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20일 화상 연결로 한국 독자들과 만나 번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현대카드 유튜브 생중계 캡처

"한강 작가의 글은 매우 시각적이고 감각적입니다. 글쓰기는 단순히 지적 활동이 아니라 거대한 도덕적 질문이고, 한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파고들죠."

한 작가의 소설을 영어로 옮긴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20일 한국 독자들과 화상 연결로 만나 '한국 문학을 세계로 이끈 번역의 힘'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그녀의 작품은 종종 폭력적이고 고통스럽고 강렬하고 극단적이거나 선정적이지만, 그건 독자와 연결되기 위한 매우 윤리적 선택처럼 보입니다."

스미스는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는 현대카드의 연례 문화행사인 '다빈치모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현재 인도에 거주 중인 그는 5년 만에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으나 몇 주 전에 아버지가 별세하면서 방한하지 못했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20일 관객들이 화상 연결을 통해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20일 관객들이 화상 연결을 통해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 스미스는 "안녕,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한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으로 2016년 한 작가와 함께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했다. 스미스는 "한 작가 작품의 번역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명이 넘을 것"이라며 "(과에 작품을 번역할 수 있게 해준) 한 작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미스가 한 작가의 작품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제가 수 백권의 한국 책을 읽은 뒤 한 작가의 작품을 골랐을 거라 생각한다"며 "한 작가의 책은 아마 제가 가진 두 번째 한국 책이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그가 한국어 번역가가 된 건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저는 책 읽는 걸 사랑하는 소녀였고, 혼자 책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책을 통해 영국 바깥의 문화를 배웠다"고 했다. 이어 "대학을 영문학 전공으로 졸업한 뒤 생업에 대한 고민을 했고, 유용한 기술로서 외국어를 공부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국 사람 대부분이 잘 모르는 언어를 배우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고, 당시 한국어는 영국에서 번역본을 찾아보기 힘든 언어였다"고 말했다. 이후 영국의 소규모 출판사가 한 작가의 작품 번역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국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스미스에게 번역 기회가 주어졌다.

"번역 초고는 너무 엉망이라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노벨문학상 받을 작품을 별로라고 느낄 정도면 제 번역이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 상상할 수 있겠죠.(웃음)"

스미스는 한 작가의 작품 중 <소년의 온다>의 몇몇 장면을 특히 아끼는 부분으로 꼽았다. 그는 "광주의 소년 '동호'가 양치질을 하거나 한옥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부분 등의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라며 "이런 게 그 시대 소년의 평범한 삶이고 그의 죽음을 통해 독자는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번역본에 종종 한국어 단어들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소주를 'soju'라고 쓰고, 만화를 'manwha'로 쓰는 식이다. 그는 "어떤 편집자는 'manwha'를 (일본어에서 따온 단어) 'manga'로 바꿔달라고 했지만 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번역가들은 원작의 문화를 더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거리 단위 '리'를 영미권에 익숙한 '킬로미터'나 '마일'로 바꾸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를 통해 다른 나라에는 거리를 나타내는 다른 표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에는 소설 대신에 동화와 시 번역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스미스는 "제가 번역가 일을 시작했을 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한국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대해 얘기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이어 "이제는 한국 문학을 영어로 옮길 수 있는 번역가가 너무 많아 제가 번역을 하든 안 하든 상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제가 사는 곳 바로 옆도시에 새로운 대형 한국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어요. 드디어 '부침가루'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요.(웃음)"

오역 논란도 한국 소설 번역을 중단한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수상으로 <채식주의자> 영역본이 화제가 되자 일부 구절에 대한 오역 논쟁이 일었다. 스미스는 "부커상을 수상한 여파로 경력 초기에 번역가로서 크게 주목받았고 많은 반발에 시달렸다"고 언급했다.

"번역은 단어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어마다 역사가 다르고 문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직역이 오히려 원작의 의도와 멀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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