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립농업과학원장으로 브라질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마음을 붙든 건 끝없이 펼쳐진 붉은 대지였다. 콩과 옥수수 재배지가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고, 세 번은 거뜬히 이어 지을 만큼 생명력 넘치는 땅. 하지만 그 풍요의 이면에는 토양 산성화와 약제 저항성, 기후 위기로 고민하는 연구진의 깊은 한숨도 자리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이들이 주목한 것은 농촌진흥청 연구진이 개발한 친환경 미생물 기술이었다. 우리 기술이 국경을 넘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기대를 안고 돌아왔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브라질은 대두와 옥수수 생산·수출을 이끄는 세계적인 농업 대국이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식용유와 육류 상당수도 브라질 농업과 연결돼 있다. 그만큼 브라질은 우리가 협력해야 할 중요한 파트너이자 K-농업의 경쟁력을 증명할 거대한 무대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에 브라질 시장은 결코 쉽지 않은 무대였다. 농약 인허가는 농업축산부, 위생감시청, 환경청 등 3개 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했고 등록에만 7~8년이 걸렸다. 기술의 우수성보다 먼저 시간을 견뎌야 하는 시장이었다. 결국 기술보다 앞서 제도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필요했다.
마침내 올해 2월, 그 문턱을 낮추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됐다. 농촌진흥청은 양국 정상 앞에서 브라질 농약 관련 3개 국가기관과 농약 인허가 간소화 협력 양해각서를, 브라질 농업연구청과는 농업 연구개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서로의 시험·평가 기준을 공유하고 기술적 동등성을 인정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약속이었다. 약속은 곧바로 실행으로 이어졌다. 5월 중순, 농촌진흥청 대표단과 국내 농자재 기업들은 다시 브라질을 찾았다. 공동 심포지엄에서는 등록·평가 기준 표준화 방안을 논의했고, 기업 간 비즈니스 미팅에서는 협력 가능성을 구체적인 과제로 발전시켰다. 정부가 제도의 길을 열고, 기업은 시장으로의 걸음을 뗐다.
하지만, 제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 시장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현장은 늘 보고서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파라나주의 농가와 상파울루 도매시장을 둘러보며 기술은 연구실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 제도, 사람을 연결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는 농약과 비료, 종자, 디지털 솔루션을 하나로 묶는 패키지형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붉은 흙 위에서 품은 가능성이 올해 다시 찾은 동료들과 국내 기업의 노력으로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실험실의 성과가 남미의 대지에서 꽃을 피우는 날, 우리는 기술 수출을 넘어 현지 농업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진정한 동반자로 기억될 것이다.
브라질, 그 붉은 대지가 묻는다. 어떤 신뢰를 남길 것이냐고. 물건은 배에 실려 가지만, 신뢰는 사람과 제도를 따른다. K농업이 세계로 간다는 말도 결국 같다. ‘더 멀리’보다 ‘더 오래’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 “일 년을 내다보면 씨를 심고, 십 년을 내다보면 나무를 심고, 백 년을 내다보면 사람을 심으라”(관자·管子). 브라질의 붉은 대지에 K농업은 지금 사람과 사람, 제도와 제도를 잇는 신뢰의 씨앗을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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