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특허 제도를 개편해 정부 수익을 수십억 달러 이상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계획이 시행되면 애플이나 스페이스X 같은 미국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 상무부가 특허권자에게 전체 특허 가치의 1%에서 최대 5%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수천 달러 수준의 정액제 수수료 구조를 대체하거나 새로운 부과 방식이 추가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해당 아이디어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세입을 늘리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주도하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특허 제도 개편은 235년간 유지된 미국 특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평가된다. 특허는 발명과 기술을 보호하며 공개를 통해 후속 연구의 기반을 제공하는 미국 경제 부흥의 핵심 역할을 했다. 현행 제도에도 특허 보유자는 다년간에 걸쳐 주기적으로 일정액씩 특허에 대한 '정액 수수료'를 정부에 지불한다. 수수료는 보통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1만달러(약 1400만원)를 수준이다. 만약 미 상무부가 특허의 가치를 기준으로 책정하는 새 수수료를 도입할 경우 특허 보유자들의 수수료 부담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새 수수료 체계가 사실상 '재산세'처럼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상공회의소 산하 글로벌 혁신 정책센터의 브래드 와츠 부회장은 "이는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이라며 "혁신에 대한 세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많은 기업들의 우려를 살 것"이라고 말했다.
상무부 산하 미 특허청(USPTO)은 현재 이 같은 안에 대해 내부 초안과 재정 모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특허 가치는 수조 달러에 이르며 삼성과 애플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은 매년 수천 건의 특허를 취득하고 있다. 특허 가치에 기반한 새 특허 수수료가 정식 도입될 경우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미국에 진출한 한국 업체를 포함한 외국 기업들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WSJ은 기업들이 이미 특허로 창출한 수익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며 이번 방안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미국의 특허 업계에선 "정부가 임의로 책정한 지식재산 가치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부과하는 방식은 혁신을 장려하기보다는 억제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 인공지능(AI)이나 보건 등과 관련한 특허로 확보한 수입에 대해 세금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특허 가치를 기준으로 새롭게 수수료를 물리는 것은 사실상의 '징벌적 이중과세'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이 가입한 여러 국제 특허 조약과의 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 특허청은 연간 약 45억 달러(6조2600억원)의 자체 수입으로 운영되는 자체 자금 조달 기관이다. 하지만 새 수수료 구조가 도입되면 수입이 수십억 달러 이상 증가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운영 비용을 넘어 국가 재정에 직접 편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WSJ는 전했다. 현재 미 특허청의 수수료 책정 권한은 내년 만료 예정으로, 의회의 결정 여부에 따라 계획의 실현 여부가 좌우될 전망이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