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등록 특허 과세 소송…대법 33년만에 판례 뒤집어
SK하이닉스 국세청 상대소송
1·2심, 韓 미등록 특허 사용료
국내 원천소득 아니라고 판단
대법 "국내 제조·판매 대가면
과세 대상으로 봐야" 파기환송
진행중인 불복 관련 세액 4조
기업부담 수십조로 늘어날수도
대법원이 대한민국 기업이 미국 등 외국 기업에 지급한 특허 사용료에 대한 국내 과세권을 인정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한미 조세협약의 해석상 미국 법인이 국내에서 등록하지 않은 특허권에 관해 지급받은 소득은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존 법리를 뒤집은 최초의 판례다.
이로써 1990년대부터 30년 넘게 이어져온 특허 과세권 논란에서 새로운 판례가 정립됐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 기업의 특허를 국내에서 사용해도 국내 과세당국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는 새로운 원칙이 확립된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해외 기업 보유 특허를 사용하는 우리 기업들의 세금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세청은 현재 관련 법리로 진행되고 있는 기업들의 '불복' 관련 세액만 4조원이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18일 대법원 전합은 SK하이닉스가 경기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경정 거부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대법관 10인의 다수 의견으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이번 소송은 반도체를 제조하는 SK하이닉스가 2011년 미국 A사와 특허 사용 관련 분쟁을 겪으면서 시작됐다. A사에서 특허 침해 소송을 당한 SK하이닉스는 미국에서만 등록된 반도체 특허 40여 건을 사용하는 대신 5년간 매년 160만달러(약 22억원)를 A사에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 및 화해계약을 체결했다.
SK하이닉스는 계약에 따라 A사에 특허 사용료를 지급하면서 국내 과세당국에 약 3억1000만원의 원천징수분 법인세를 납부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이후 "한미 조세협약에 따라 이 사건 사용료는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것이므로 과세 대상이 아니다"며 법인세 환급을 청구했다. 사용한 특허가 해외에만 등록됐을 뿐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원천소득이 아니어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과세당국은 "특허가 대한민국에 등록되지 않았어도 국내에서 그 특허를 사용해 제조·판매했다면 세금을 내야 한다"며 경정 청구를 거부했다. SK하이닉스는 "해외 특허를 국내에서 쓴다고 과세하는 것은 이중 과세"라며 해당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국외 특허 사용료는 국내 원천징수 대상이 아니라며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특허권은 등록된 국가 외에서는 침해될 수 없어 사용 대가를 지급한다는 것은 애초에 상정할 수 없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이 사건 사용료는 한미 조세협약 등을 근거로 국내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다.
대법원 전합은 이 같은 판례를 33년 만에 뒤집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한미 조세협약의 해석상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 외에서는 특허권의 침해가 발생할 수 없어 국내 미등록 특허권은 국내에서의 사용 자체를 상정할 수 없다고 봐왔다.
그러나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특허 기술이라도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사용하기 위한 대가라면 이는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번 전합의 판단이다. 대법원 전합은 "이 사건 사용료가 단지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허 기술이 국내에서 사실상 사용됐는지를 살피지 않고 곧바로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에는 관련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노태악·이흥구·이숙연 대법관 3인은 반대 의견을 냈다. 특허권의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의 사용'은 해당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이뤄질 수 있고 이를 확립한 종전 대법원 판례는 타당하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취지다.
김지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번 전합 판결은 한미 조세협약상 '특허의 사용' 개념을 기존보다 넓게 해석한 것"이라며 "외국 법인이 특허권을 국내에서 등록하지 않은 경우라도 그 특허권이 국내에서 사용된 경우에는 그 사용의 대가로 지급받는 소득을 국내원천소득으로 보게 됐다는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번 대법 판결에 따른 국가 재정 확충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판례 변경이 되지 않았다면 모두 국외로 지급돼야 할 세금"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특허 사용료 지급은 현재 불복 중인 사업연도 이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수십조 원의 세수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기 기자 / 이승윤 기자 / 전경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