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백조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밑에서는 쉼 없이 발장구를 쳐야한다. 대부분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백조의 우아함만 눈에 들어온다. 핸드볼 역시 마찬가지다. 만나는 감독마다 먼저 수비가 돼야 공격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고 수비를 강조한다. 그만큼 수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회려한 공격에 시선이 쏠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베스트 7 외에 최고의 수비상을 따로 마련해 시상한다. 그만큼 수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핸드볼에 수비 포지션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공격 선수들이 들어와 방어하면 수비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수비 전문 선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핸드볼은 선수 교체가 자유롭기 때문에 공격할 때는 공격수들이 나가고, 공수가 전환되면 일부 수비 전문 선수들이 재빨리 코트로 달려나간다. 공격수들의 체력 안배 차원도 있지만,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수비 전문 선수를 투입하는 것이다.
여자부는 남자부에 비해 수비 전문이 많지 않은 편이다. 키 큰 피벗들이 중앙 수비를 전담하면서 수비에서도 피벗들이 강세다. 그런만큼 국가대표 수비 전문 한미슬(SK슈가글라이더즈)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부상으로 은퇴했다가 2023-24 시즌 인천광역시청으로 복귀했던 한미슬은 국가대표에 선발돼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격력에 비해 수비에서 무게감이 떨어지는 국가대표의 무게 중심을 잡아줬다.
한미슬은 2023-24시즌에는 28개의 블록샷과 스틸 15개, 리바운드 14개를 기록하며 단연 수비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부상을 완전히 떨쳐버린 모습에 통합 우승을 차지한 SK슈가글라이더즈에서 한미슬을 영입하더니 19연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한미슬이 합류함으로써 전승 우승까지 넘볼 정도로 공수에서 안정감을 보였다. 또 무릎 부상으로 완전한 컨디션이 아닌 강은혜(피벗)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었다.
한미슬은 지난 시즌 단 2개의 슛에 그쳤다. 그만큼 철저히 수비에만 전념하며 블록샷 14개와 스틸 5개, 리바운드 13개를 기록했다. 복귀 시즌에 비해 대부분의 수치가 내려갔지만, SK슈가글라이더즈가 로테이션을 가동하면서 그만큼 출전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10시간 넘게 뛰었던 한미슬은 지난 시즌에는 5시간 45분만 중앙 수비를 책임졌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다시 대표팀의 부름을 받고 합류해 국가대표 수비 전문으로 위상을 공고히 했다. 한미슬의 이러한 활약 덕에 앞으로 여자부에서도 수비 전문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SK슈가글라이더즈는 한미슬을 영입하기 전에도 이현주가 수비 전문으로 활약했다. 2023-24시즌 통합 우승 이후 김경진 감독이 보이지 않는 수훈 선수로 이현주를 꼽을 정도로 수비에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현주는 공격에서도 활약하며 이번 시즌에도 11골과 10개의 도움을 기록했고, 스틸 23개로 독보적인 손 놀림을 보여줬다. 블록샷 5개와 리바운드 9개 등 SK슈가글라이더즈 2연패 달성의 숨은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광주도시공사 김금순은 22골에 3개의 도움을 기록했지만, 수비형 피벗이다. 신인 연지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공격과 수비 모두에 가담했지만,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좀 더 진가를 발휘했다. 김금순은 17개의 블록샷과 스틸 9개, 리바운드 6개를 기록했다. 179cm의 큰 키에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김세진(경남개발공사 피벗)은 공격과 수비에 모두 나서지만, 엄밀히 따지면 수비에 초점이 맞춰진다. 김소라 때문에 피벗에 설 수 없는 김세진은 오른손잡이 이면서도 라이트윙으로 뛰며 28골을 만들었다. 경남개발공사에 왼손잡이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김세진은 나름대로 충실한 역할을 해냈다. 특히 수비에서 블록샷 18개와 스틸 4개, 리바운드 17개를 잡아내며 김소라와 함께 중앙 수비를 책임졌다. 김세진의 이런 노력 덕에 시즌이 끝나고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용필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