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신하연 기자] 자진 상장폐지(상폐)를 목표로 한 기업들의 공개매수가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잇달아 좌초되고 있다. 최근 한솔PNS(010420)와 텔코웨어(078000)가 공개매수 목표 지분 확보에 실패한 데 이어, 2차 공개매수를 진행 중인 신성통상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 등 제도 변화를 앞둔 기업들의 선제적 움직임에 소액주주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양상이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한태 텔코웨어 대표는 최근 자사주 407만6074주(44.1%)를 제외한 유통주식의 25.24%를 매수하겠다는 조건으로 공개매수를 진행했지만, 실제 응모율은 10.44%에 그쳤다. 상장폐지를 위한 최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진행한 공개매수 결과, 응모주식은 96만4876주로, 공개매수 예정수량인 233만2438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1.4% 수준이다. 금 대표 지분율은 특별관계자를 포함해 41.09%까지 늘었지만 자진상폐 요건(95%)에 필요한 지분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에 앞서 한솔홀딩스도 한솔PNS의 자진 상폐를 위해 지난달부터 이달 2일까지 주당 1900원에 공개매수를 진행했으나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은 86만4851주에 불과해 예정수량 325만290주의 26.6%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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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내달 9일까지 계열사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을 통해 2차 공개매수를 진행 중인 신성통상에 대한 주주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지난해 1차 공개매수가로 제시했던 2300원보다 78% 높은 4100원을 제안했지만, 소액주주들은 과거 오너일가가 내부거래로 주식을 매입했던 가격인 4920원보다 공개매수가가 낮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소액주주 반대로 공개매수가 무산된 만큼, 이번 시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앞서 신성통상은 지난해 6월 추진한 공개매수에서 지분 5.89%만을 확보하며 공개매수에 실패한 바 있다.
상장사들이 자진상폐에 속도를 내는 건, 새정부의 자사주소각 의무화와 상법 개정 등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사주를 활용한 경영권 방어나 지분 확보 방식이 제약받기 전에 상폐를 마무리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공개매수 실패 사례에는 공통적으로 ‘불합리한 공개매수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소액주주 행동주의 플랫폼인 액트(ACT)의 윤태준 연구소장은 “기업이 자진 상폐를 결정할 때는 먼저 주주를 설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개매수 가격을 제시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에선 주주에게 적정한 가치를 보상하지 않고 자진상폐를 시도하면서 주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신성통상이나 앞서 락앤락, 커넥트웨이브 같은 사례를 보면 지난 5년 중 주가가 가장 낮은 시점에 공개매수를 했고, 나아가 일부러 주가를 낮춰 공개매수를 했다는 인식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또 “순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공개매수가를 산정하게 하는 등 규제적인 측면도 필요하다”면서도 “상법 개정이 예정대로 통과되고 즉시 발효된다면, 기업들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등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개매수가 산정 과정에서부터 주주들과 더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