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혈액암 치료에 대대적인 투자
병상수 245개로 국내 최다
어린이병실·맞춤 검사법 갖춰
'혈액생산' 세포 이식하는 수술
年 600건 맡아 세계 최고 수준
환자 개인 맞춤형 연구도 추진
수면·생활습관 데이터로 구축
◆ 암 치료 최전선을 가다 ◆
"혈액은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니죠. 여기에 생긴 암을 치료한다는 건 '모든 피를 빼낸 뒤 새로 싹 갈아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센 치료가 필요하고 환자도 고통스럽죠. 예후가 좋다가도 갑자기 나빠질 수 있고 완치까지는 산 넘어 산이지만, 우리가 아니면 못한다는 생각으로 버팁니다."
국내에 한 곳뿐인 '혈액암의 4차병원'. 치료 난도 최상의 백혈병과 림프종, 골수종 등 혈액암을 최전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곳은 서울성모병원이다. 급성 백혈병 환자가 항암제 투여를 시작한 후 치료를 마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년, 이 병원 의료진은 24시간 온콜(on-call) 상태로 환자 곁을 지키는 게 일상이다.
15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국내 조혈모세포 이식의 약 20%가 이 병원에서 이뤄진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이 병원을 찾는 환자는 연평균 1만6000여 명, 10명 중 6명은 지역 소재 3차병원에서 전원했다.
탁월한 치료 성과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 10여 년간 이곳에서 치료받은 다발골수종 환자 1291명의 중앙 생존기간(OS)은 80.5개월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사 대상 환자의 절반 이상이 6년 넘게 삶을 이어갔다는 의미로, 우리나라 평균보다 2.4배 높은 수치다. 국내 난치성 혈액암의 치료 성적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정 장기에 종양이 생기는 고형암과 달리 혈액암은 피를 만드는 공장인 '골수'에서 시작된다.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고 치료법 자체가 강력하다 보니 합병증도 많이 생기는 편이다.
'치료기간 1년'이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 정도다. 급성 백혈병은 치료가 되지 않으면 생존기간이 평균 3~6개월에 불과하다.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국내 백혈병 환자 중 75%가 급성에 해당한다. 민창기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급성 백혈병은 진행 속도가 매우 빨라 이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치료제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만성 백혈병과 비교했을 때 치료 선택지가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급성 백혈병과 관련한 새로운 임상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치료법은 조혈모세포 이식이다.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를 건강한 세포로 갈아끼우는 것을 말한다. 서울성모병원은 연평균 600여 건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는데, 이는 단일 의료기관 기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크게 자가와 동종으로 나뉜다. 자가이식은 환자 본인의 조혈모세포를 냉동 보관했다가 항암 치료가 끝나면 이를 해동해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혈액암 특성상 재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동종이식은 가족이나 타인에게서 받은 조혈모세포를 활용하는 형태다. 통상 자가이식보다는 동종이식이 시술 난도가 높은 편인데, 서울성모병원은 이 비중이 평균 74%에 이른다.
서울성모병원은 혈액암 치료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쏟아부었다. 현재 혈액병원의 병상 수는 총 245개로, 국내 최다 규모다. 외래 주사실의 경우 고형암과 통합 운영하는 여타 병원들과 달리 혈액병원이 48개 병상을 자체 보유하고 있다. 혈액질환자만을 위한 중환자실과 고용량 항암 병상도 따로 마련돼 있다.
소아혈액종양센터 역시 무균실 36병상을 포함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응급실을 찾는 환아들을 위한 전용 병상도 운영 중이다. 이재욱 서울성모병원 소아혈액종양센터장은 "항암 치료에 돌입하면 골수검사 4~7회, 척수검사 20~30회씩 진행하는데 통증이 워낙 심하다 보니 아이들에겐 공포 그 자체"라며 "소아의 항암 치료는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도진정 요법 등을 도입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혈액암 환자에게 보다 향상된 치료법을 제공하기 위해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라이프로그 데이터란 환자 개인의 일상 활동, 수면 패턴, 우울지수, 생활 습관 등을 수치화한 것이다. 혈액암 치료에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도 이번이 첫 시도다.
박성수 서울성모병원 다발골수종센터장은 "카티(CAR-T) 세포 치료제, 이중항체 치료제 등이 개발됐으나 혈액암의 경우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제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검증 작업이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며 "진료를 통해 도출되는 정형화된 정보가 아닌 환자가 직접 참여하는 양방향 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치료 전략을 구축하면 획기적인 예후 개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