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호텔신라(008770)가 인건비와 재료비를 줄이며 허리띠를 졸랐지만 임차료 폭탄에 수익성 개선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공항 이용객수와 연동한 인천공항의 면세점 임차료 산출 방식 탓에 임대료 부담이 크게 늘면서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국내 면세점 업계의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임차료 산출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적자 구조가 고착화하는 것은 물론 신용등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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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신라면세점 전경.(사진=호텔신라) |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가 올해 1분기 기타영업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3739억원으로 전년 동기 3173억원 대비 17.3% 증가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임차료가 같은 기간 1538억원에서 2002억원으로 29.3% 늘며 비용 부담을 가중시켰다.
호텔신라의 임차료 증가에는 인천공항 면세점 부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텔신라는 2023년 하반기부터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을 시작했다. 이에 따른 임차료도 지난해 처음 실적에 반영됐다.
문제는 인천공항의 면세점 임차료 산정 방식이 호텔신라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은 2023년부터 면세점 임대료를 공항 이용객 수에 연동해 산출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기존에는 공항 이용객 수와 관계없이 고정 금액을 납부하는 구조였다.
호텔신라는 입찰 당시 여객 1인당 약 1만 원 수준의 수수료를 제시했다. 여기에 인천공항의 월평균 이용객이 약 300만 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매월 임차료만 약 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3600억원 규모로 이는 호텔신라 연매출의 약 1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구조는 호텔신라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전환되며 공항 이용객 수는 빠르게 늘었지만 면세점 매출 회복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인천공항 국제선 이용객 수는 7066만9246명으로 개항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도 9만명 이상 많은 수치다. 반면 국내 면세점 시장은 아직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면세점 1인당 구매액은 45만7000원으로 2019년(47만9000원)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임차료 부담이 확대되면서 호텔신라의 비용절감 노력도 물거품이 되는 모양새다. 호텔사업에서 재료비와 인건비를 줄이며 수익성 개선 노력을 이어갔으나 임차료 증가폭이 이를 크게 웃돌아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실제 호텔신라가 올해 1분기 지출한 재료비와 인건비는 각각 5320억원, 6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3%, 3.9% 감소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대비 적자 전환했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임차료 부담이 장기적으로 호텔신라의 신용등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호텔신라의 신용등급 평가 핵심 요인으로 면세부문의 현금흐름 확대를 꼽고 있는 만큼 임차료 부담 확대에 따른 수익성 저하가 뼈아플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는 보고서를 통해 “재무부담 완화를 위해 주력사업인 면세부문 실적 개선에 기반한 현금흐름 확대가 수반돼야 한다”며 “임차료 등 비용 확대에 상응하는 추가적인 수요 회복 및 매출 증가폭, 면세업계 전반의 모객수수료율 정상화 기조 유지 여부 등이 주요 모니터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호텔신라가 호텔 등 면세부문 외 사업에서 비용 절감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임차료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빛이 바랬다”며 “특히 호텔부문의 경우 품질 유지를 고려했을 때 비용 절감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면세수요의 확대 외에는 임차료 부담을 해소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호텔신라는 지난달 8일 인천지방법원에 임차료 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호텔신라는 인천공항 제1·2 여객터미널 내 화장품, 향수 주류, 담배 매장의 임대료를 40% 인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