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바젤의 미식 혁명…잭슨 폴록이 된 에드워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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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모인 관객 800명과 함께한 에드워드 리 셰프의 퍼포먼스. /ⓒ THEM good

현장에 모인 관객 800명과 함께한 에드워드 리 셰프의 퍼포먼스. /ⓒ THEM good

“설거지대로 향하는 빈 접시를 보며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셰프가 10시간 공들여 만든 아름다운 요리도 포크와 스푼에 의해 몇 분 만에 사라지잖아요. 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죠.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제가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길 바랍니다.”

흑백요리사 시즌1 스타이자 백악관 만찬을 책임졌던 에드워드 리 셰프(이균·54). 지난달 25일 홍콩 서주룽 문화지구 현대미술관 엠플러스(M+)에서 만난 그는 14가지 소스를 붓과 팔레트처럼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접시에 소스를 담는가 싶더니, 덜어놓은 자줏빛 소스를 숟가락으로 내리쳐 수직으로 낙하하듯 연출하고 캔버스에 붓질을 하듯 주황색 소스를 접시에 쓸어 발랐다. 초록색 소스는 흘리듯이 흩뿌려 마치 한 폭의 추상 작품 같은 모습을 완성했다. 아트바젤 홍콩 14주년을 기념하며 14가지 소스를 활용한 퍼포먼스인 ‘뎀굿파티(THEM Good party)’ 오프닝 장면이다.

“셰프는 뿌리고, 우리는 망가뜨린다”

붓이 된 스테이크가 꽂힌 포크.

붓이 된 스테이크가 꽂힌 포크.

이날 퍼포먼스에 공식 초대받은 관객은 200명으로 실제로는 총 800명이 모여 에너지를 나눴다. 스테이크가 꽂힌 포크를 하나씩 집어 든 200여 명은 무대로 올라가 에드워드 리 셰프가 플레이팅한 소스를 맛봤다. 관객들은 셰프의 움직임만큼이나 자유롭게 ‘먹었다’. 그림을 그리듯 일직선으로 혹은 자신이 원하는 제각각의 모양으로 흔적을 남겼다. 스테이크에 소스를 묻힌 뒤 다른 접시에 뿌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어지럽혀진 접시 위 소스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작품이 됐다.

뎀굿파티는 지식재산권(IP) 콘텐츠 기업 뎀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아트바젤 홍콩에서 처음으로 관객과 만났다. 뎀은 감탄, 놀람을 강조하는 영어 속어 ‘DAMN’과 발음이 같은 THEM을 사용해 언어유희적으로 풀어낸 표기다. 뎀굿파티는 다양한 문화권의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가 영감을 주고받으며 관객과 함께하는 자리로 기획됐다. 이들은 파티뿐 아니라 식문화, 패션 등 여러 분야에서 THEM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라피티의 자유분방함 닮은 퍼포먼스

관객이 소스를 찍으며 어지럽혀지는 접시 그 자체가 작품이 됐다.

관객이 소스를 찍으며 어지럽혀지는 접시 그 자체가 작품이 됐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예술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표현해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퍼포먼스 후 아르떼와 만난 그는 대표적인 17세기 바로크미술 화가 렘브란트부터 20세기 추상표현주의 선구자 잭슨 폴록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미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책 세 권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에서 그는 그라피티 예술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즉흥적 행위와 자유로움으로 완성된다는 점에서 그라피티 예술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저는 그라피티의 핵심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일시적이죠. 이 프로젝트는 음식이 얼마나 순간적인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몇 초 만에 없어지고,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사라지니까요. 사람들이 이 특별한 순간을 느꼈기를 바랍니다. 한 번 하고 나면 영원히 사라지는 그런 경험 말이죠.”

에드워드 리 셰프는 이번 퍼포먼스에 고추장, 갈비 파슬리 버터, 레드와인 무화과 소스 등 14가지 소스를 사용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이번 퍼포먼스에 고추장, 갈비 파슬리 버터, 레드와인 무화과 소스 등 14가지 소스를 사용했다.

그는 요리에 이야기를 담는 사람이다. 이민자로서 자신이 경험한 삶과 문화는 물론 철학도 보여준다. 이번 작업에도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셰프로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오늘 이 작업은 제가 혼자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레스토랑도 손님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듯이 항상 공동체가 중요하죠. 오늘 제가 선보인 퍼포먼스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수 홍콩 건축가도 참여

그의 말대로 이번 이벤트에는 크리에이터 4명이 의기투합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를 비롯해 건축가 오토 응, 미디어 아티스트 에디 강, 바텐더 김하림이 함께했다. 오토 응은 침사추이의 문화예술공간 K11 뮤제아, 필립스옥션 홍콩 사옥 등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를 담당한 건축사무소 LAAB 수장이다.

셰프의 퍼포먼스만큼이나 이를 담는 그릇도 화제를 모았다. 오토 응과 그의 팀은 길이 3.6m 접시를 제작해 무대에 선 사람들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확장될 수 있도록 했다. 접시 이름은 ‘하버 플레이트(Harbour Plate)’. 홍콩인에게 사랑받는 빅토리아 항구가 모티브가 됐다.

“이 접시에는 우리가 있는 위치와 주룽반도, 홍콩섬이 표현돼 있어요. 엠플러스가 항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 풍경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오토 응)

오토 응은 안성재 셰프 레스토랑인 모수 홍콩 공간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번 협업으로 오토 응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셰프 두 명과 호흡을 맞춘 건축가가 됐다. 그는 “두 셰프 모두 완벽함을 중요시하고 디테일에 매우 신경을 쓴다”며 “아이디어를 빠르게 떠올리고 다듬어가며 아름답게 구현한다는 면에서 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콩=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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