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024학년도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은 4만3149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당장 9월 새 학기를 앞두고 비자 발급을 준비하던 유학생과 교환학생, 박사후 연구원 등이 날벼락을 맞았다. 이미 거액의 학비를 냈는데 출국을 장담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 아예 재수나 입대를 고민하는 학생도 있다. 보딩스쿨에 합격한 중고생까지 비자가 거절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안식년을 맞은 교수들은 미국행을 포기하고 유럽 대학 문을 두드린다.
▷차근차근 준비한 인생 계획이 틀어질까 초조한데 트럼프 정부가 이를 이용해 급행료 장사에 나선다고 한다. 비(非)이민 비자 신청 시 1000달러를 내면 비자 인터뷰를 앞당겨 주는 프리미엄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실제로 시행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비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제 비용보다 수수료를 높게 책정해선 안 된다는 연방대법원 판례가 있어서다. 현재는 비자 수속 비용으로 185달러를 받고 있다.
▷문을 걸어 잠그는 동시에 이미 거주 중인 외국인도 내쫓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적발 후 취소’(Catch and Revoke)라는 인공지능(AI) 기반 프로그램을 통해 유학생의 SNS 활동을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비자를 취소하고 있다. 4월까지 유학생 약 1200명의 비자가 취소됐다. 반미 성향이나 반유대주의 시위 참여 등을 문제 삼거나 음주운전, 과속 같은 경범죄 기록만으로 비자가 취소된다. 심지어 구금된다. 위헌적, 차별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강행하고 있다.▷미국 대학에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유학생이 진학한다. 이들은 내국인보다 비싼 학비를 포함해 약 440억 달러를 쓴다. 유학생이 줄면서 대학들은 재정적 타격, 연구 역량 위축을 우려하고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대학은 미국적 가치를 전파하는 플랫폼이었다. 이런 소프트 파워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인재를 블랙홀처럼 끌어모은 덕분에 미국은 번영을 누려 왔다. ‘쇄국’으로 흥한 나라는 없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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