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시아 청약, 다시 생각해 볼게요 [김용우의 각개전투]

3 weeks ago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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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성형 AI

사진=생성형 AI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원베일리'나 '청담 자이'라고 답하는 시대입니다. 최상급 입지와 브랜드만으로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기도 합니다. 건설사들이 하이엔드 브랜드를 보유하고, 고급 커뮤니티와 생활편의 시설을 갖춘 단지를 내놓는 이유입니다.

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은 사정이 다릅니다. LH도 '휴먼시아'나 '뜨란채'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개는 지역명만 말합니다. 그만큼 공공주택 브랜드에 대한 선호는 높지 않습니다.

공급 확대에도 브랜드 선호는 여전

과거 공공주택으로 공급된 아파트를 흔히 '주공아파트'라 불렀습니다.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의 줄임말인 '주공'에서 비롯됐습니다. 강남 개발과 함께 1970~80년대에 지어진 반포주공아파트, 개포주공아파트는 재건축을 거쳐 원베일리, 디에이치 클래스, 써밋 같은 세련된 이름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변모했습니다.

논란이 많았던 둔촌주공아파트도 '올림픽파크 포레온'이라는 새 이름으로 단군 이래 최고의 재건축을 마무리했습니다. 현재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잠실주공5단지는 낙후된 시설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장 아파트의 명성을 유지하며, 얼마 전까지 최고가를 갱신했습니다.

정부는 최근 도심의 노후 공공청사나 유휴 부지 등을 활용해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미 확보된 땅에서 공급을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LH 아파트 브랜드에는 여전히 '저소득층 주거'라는 낙인이 남아 있어 기피하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휴먼시아나 뜨란채를 대규모로 공급한다고 해도, 높아진 주택 구매층의 눈높이를 충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공공과 민간의 기준은 '시행'

그렇다면 공공주택은 반드시 휴먼시아나 뜨란채로만 지어야 할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공공과 민간의 구분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급하면 공공주택, 민간이 공급하면 민간주택입니다. 민간 아파트는 민간 시행사나 토지주가 모인 조합이 토지와 자금을 확보한 뒤 대형 건설사에 시공을 맡깁니다. 우리가 익숙한 아파트 브랜드명은 대부분 시공사의 것입니다.

즉, '공급'의 기준은 '시공'이 아니라 '시행'입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부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받는 '시행'이 필요합니다. 이후 아파트를 짓는 것이 '시공'입니다. 국가가 시행을 맡으면 공공주택, 민간이 시행을 맡으면 민간주택입니다.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시행 주체에 따라 공공과 민간이 나뉘기 때문에, 시공은 결국 건설사가 합니다. 국가가 직접 시공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건설사가 보유한 브랜드는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주택이라고 해서 반드시 '주공'이나 '뜨란채' 같은 자체 브랜드만 써야 하는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 공공아파트도 '래미안'이나 '자이'를 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LH가 발주하고 대형 건설사가 시공해 '래미안'이나 '자이' 브랜드로 분양한 사례가 있습니다.

시공이익 보장과 대기업 참여의 현실

시공사로서도 시공이익이 충분히 보장된다면 굳이 공공주택을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최근 환율 급등, 원자재·인건비 등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가 크게 올라, 과거 평당 400만 원이던 공사비가 현재는 1000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주요 건설사는 이제 평당 1000만 원의 시공비를 보장하지 않으면 웬만한 입찰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강남권 정비사업의 평균 공사비를 평당 1000만 원으로 계산하면, 84㎡ 아파트를 짓는 데 약 2억 5천만 원이 듭니다. 현재 20억, 30억 원을 웃도는 강남 아파트 가격을 고려하면, 2억~3억 원 수준의 시공비는 전체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즉, 땅값만 합리적으로 책정된다면 시공비를 충분히 들여 고품질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공공이 발주해 안정적인 시공이익을 보장한다면, 시공사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부산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부산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합니다. 대형 건설사의 고급 브랜드는 희소성과 프리미엄 이미지가 핵심입니다. 공공주택 사업은 대량 공급, 저가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래미안'이나 '자이'가 공공주택에 붙으면 소비자 인식이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민간 고급 분양 시장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여기에 공공 입찰은 사전심사, 시공 능력 평가, 실적 요건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습니다. 하도급 관리 규제도 강합니다. 발주자인 국가가 대형 건설사를 선정하면 중견·중소 건설사의 반발이 나올 수 있어, 정부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질 좋은 공공주택을 위한 과제

결국 공공주택은 과거 주공아파트처럼 보급형 이미지를 벗어야 합니다. 다양한 브랜드를 적용하고, 때로는 대형 시공사의 하이엔드 브랜드에 견줄 만한 인프라와 품질을 갖춰야 합니다.

일부 학생들이 쓰던 표현이 확산하면서 주공아파트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수요층의 눈높이는 이미 높아졌고, 이런 인식이 남아 있는 한 과거 방식의 공공주택은 매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휴먼시아나 뜨란채로 공급하는 것은 시장 안정을 위한 유효한 공급이 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질 좋은 공공주택이 공급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공주택에 관한 인식은 개선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대형 건설사의 고민도 줄고, 중견 건설사도 LH의 브랜드를 활용해 공공아파트 공급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공공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합니다. 가격이나 브랜드가 아닌 주거 품질로 평가받는 환경이 조성될 때, 공공주택은 '저가 주거'가 아니라 누구나 살고 싶은 집이 될 수 있습니다.


휴먼시아 청약, 다시 생각해 볼게요. [김용우의 각개전투]

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ㅣPF사업, 정비사업, 건설하도급 등 부동산 분쟁 전문가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을 수료했다. 투자자산운용사와 국가공인 원가분석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고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을 연구해 업계 최초로 전자책을 출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전문건설공제조합, 코트라(KOTRA) 및 각종 건설사와 학회에서 강의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가졌으며,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건설사에 파견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를 토대로 해외부동산투자 관련 분쟁에도 관여하고 있다. 2024년 대한변협 우수변호사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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