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하면 5000만원 지급”
가족엔 보증각서 작성 요구
충남 보령시에서 일하던 외국인 계절노동자가 관리자의 상습적인 폭언을 견디다 못해 일터에서 탈출하자, 그의 여권 사진과 실명이 페이스북에 공개되며 비난과 신변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됐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등 이주민 인권 단체는 20일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보령시에서 일하던 한 필리핀 계절노동자의 여권 사진 등 신상이 온라인에서 유포됐다며 인권침해와 인신매매 피해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진정했다.
외노협에 따르면 30대 필리핀 남성은 4월 초 한국에서 결혼한 여동생의 초청으로 계절근로자 비자(E-8)를 받아 보령의 한 수산업체에 취업했다. 그러나 50대 한국인 관리자는 술을 먹고 폭언을 일삼았고, 칼로 숙소 문을 두드리거나 물건을 던지며 위협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남성은 지난달 중순 일터에서 탈출했다.
문제는 그 이후라고 단체는 지적했다. 노동자 관리 업무를 맡은 통역인이 페이스북에 해당 필리핀 남성의 여권 사진과 실명을 올리고 “취업 허가가 연장되지 않아 도망쳤다”는 글을 게시했다. 이 글이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남성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비난과 신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단체는 설명했다.통역인들은 해당 남성이 일터를 이탈한 이후, 출국과 재입국이 확정된 다른 계절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이른바 ‘가족 보증 계약서’ 작성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계약서에는 노동자가 사업장을 무단 이탈할 경우 보증인(주로 가족)이 30일 안에 5000만 원을 지급하고, 이를 다른 노동자 가족에게 분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단체는 이를 두고 “계절노동자의 자유로운 이탈을 제한하고 강제노동을 유도하는 수단”이라며 “인신매매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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