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벌었는데 실패?”…퇴직연금 수익률의 함정

1 week ago 19

[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같은 숫자를 두고 정반대의 평가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은행 금리가 2%인 시대에 수익률 10%는 분명 박수받을 성과입니다. 하지만 그해 주식 시장 전체가 30% 올랐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남들 다 30% 벌 때 혼자 10% 벌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심각한 ‘실패’입니다. 반대로 시장이 20% 폭락했는데 손실을 5%로 막았다면, 손실이 났음에도 탁월한 방어로 칭송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숫자는 맥락 없이 존재할 때 가장 교묘한 거짓말쟁이가 됩니다. 연금 선진국들이 ‘얼마나 벌었나’라는 절대수익률만 보지 않고, 어떤 위험을 감수했고, 어떤 벤치마크와 비교해야 하며, 비용을 뺀 뒤 실제로 얼마를 남겼는지를 따지게 된 배경에는 투자 성적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1990년대 월가, ‘체리 피킹’의 유혹 1990년대, 미국 자산운용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수천 개의 운용사가 난립하며 저마다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광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팸플릿을 보면 모든 운용사의 수익률이 시장 평균을 넘었습니다. 모두가 1등이라니,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밀은 ‘체리 피킹(Cherry Picking)’에 있었습니다. 맛있는 체리만 쏙쏙 골라내듯, 운용사들이 자신이 굴리는 수백 개의 계좌 중 수익률이 잘 나온 계좌만 골라서 보여주고, 망한 계좌는 슬그머니 통계에서 뺐던 것입니다. 심지어 “과거 5년 수익률”을 보여줄 때, 성과가 좋았던 특정 5년 구간만 잘라내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화려한 숫자에 속아 돈을 맡겼고,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1999년, ‘정직한 성적표’의 탄생 — GIPS 이 혼탁한 시장을 정리하기 위해 전 세계 투자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미국투자관리연구협회(AIMR, 현 CFA Institute) 주도로 수년간의 논쟁 끝에 1999년, 기념비적인 국제 표준이 탄생합니다. 바로 GIPS(Global Investment Performance Standards, 국제투자성과기준, 펀드 운용사가 임의로 잘 나온 성과만 골라 보여주지 못하도록 전 세계가 약속한 통합 성과 공시 표준)입니다. GIPS의 철학은 단호했습니다. “공정하게 표시하고, 충분히 공개하라.” 1. 컴포지트 — 잘한 계좌만 뽑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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