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간 실과 빛으로 엮은 레이스의 품격, 칼레 코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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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는 섬세하고 세련된 섬유 예술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의상과 공간을 아름답게 장식해 왔다. 유럽 왕실 궁정에서부터 현대 오트 쿠튀르 패션쇼의 런웨이, 그리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비욘세의 칼레-코드리 레이스 드레스까지, 그 역사는 복잡한 무늬만큼이나 다채롭고 풍요롭다.

레이스는 우아함과 섬세함,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품격을 상징한다. 신부의 드레스를 장식하고, 화이트와 핑크 레이스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블랙 레이스는 강렬하고 매혹적인 팜 파탈의 이미지를 연출하며, 화려한 실내 공간에도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장인의 기술, 문화적 경쟁, 그리고 기술 혁신이 얽힌 깊은 역사가 숨어 있다.

레이스의 시작

레이스의 역사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오늘날의 벨기에)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귀족들의 칼라, 소매 끝, 옷단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자카드, 브로케이드나 캐시미어와 달리 레이스는 궁정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 뜨는 여인>이나 가스파 네쳐의 작품에서 보이듯 소박한 가정에서 솜씨 좋은 여성 장인들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좌] Johannes Vermeer, 레이스 뜨는 여인(De kantwerkster) 1669 & 1671 © Louvre Museum, Paris  [우] Caspar Netscher, 레이스 뜨는 여인, 1662 © Wallace Collection, Londres

[좌] Johannes Vermeer, 레이스 뜨는 여인(De kantwerkster) 1669 & 1671 © Louvre Museum, Paris [우] Caspar Netscher, 레이스 뜨는 여인, 1662 © Wallace Collection, Londres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특히 부라노에서 생산된 레이스는 르네상스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꽃무늬와 기하학적 무늬로 널리 알려졌다. 처음에는 장식용 끈이나 술 장식인 파스멘트리라고 불렸으며, 프랑스어로 레이스를 뜻하는 덩텔이 1545년 프랑수아 1세의 여동생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의 혼수품 목록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레이스의 황금기

17세기에서 18세기 초는 레이스의 황금기로, 레이스는 유럽 전역의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루이 14세 시대의 프랑스 궁정을 비롯해 스페인, 오스트리아, 잉글랜드 등 유럽 각국의 왕족과 귀족들은 화려한 레이스 칼라와 커프스 장식으로 권위와 세련미를 과시했다.

안토니 반 다이크 <Triple Portrait of Charles 1> (1635 - 1636경) © 영국 왕립 컬렉션 / 사진출처. Google Art & Culture

안토니 반 다이크 <Triple Portrait of Charles 1> (1635 - 1636경) © 영국 왕립 컬렉션 / 사진출처. Google Art & Culture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아래에서 레이스 산업이 전략적으로 육성되었다. 국왕은 외국산 레이스의 수입을 금지했고, 재무 장관 콜베르는 1665년 알랑송과 샹티이에 국립 공방을 설립하여 프랑스산 레이스의 발전을 적극 장려했다.

Chantilly 블랙 레이스 숄을 한 여인, 1865 © Library of Arts Decoratifs, Paris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Chantilly 블랙 레이스 숄을 한 여인, 1865 © Library of Arts Decoratifs, Paris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 시기 레이스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으며, 막대한 가치를 지녀 때로는 보석을 대신하기도 했다. 금이나 은으로 제작된 경우도 있었고, 특히 흰색과 검은색이 가장 선호되었다. 일부 레이스는 신분에 따라 착용을 제한하는 법령이 내려질 만큼 사회적 위계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이렇듯 레이스는 단순한 섬유 제품을 넘어,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사회적 언어이자 미적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좌] '이사벨라 클레어 유제니아' (1650)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우] 제이콥 페르디난드 보엣의 '키지 가문의 젊은 남자 초상' (약 1670년) © Alençon Museum of Fine Arts and Lace, Alençon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좌] '이사벨라 클레어 유제니아' (1650)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우] 제이콥 페르디난드 보엣의 '키지 가문의 젊은 남자 초상' (약 1670년) © Alençon Museum of Fine Arts and Lace, Alençon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산업혁명이 뒤흔든 레이스의 세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산업혁명의 도래는 레이스 산업에도 근본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1809년 영국의 존 히스코크가 최초의 기계식 레이스 직기, 이른바 보비넷 레이스 기계를 발명하면서 레이스는 대량 생산의 길로 들어섰다. 이 발명은 레이스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불과 몇 년 뒤인 1813년, 또 다른 영국인 존 리버스는 이 기술을 한층 발전시켜 리버스 직기를 고안했다. 이 직기는 복잡하고 정교한 무늬를 기계로 재현할 수 있게 하여, 수작업 레이스와 흡사한 고급스러운 품질의 제품 생산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은 레이스를 귀족의 전유물에서 대중이 누릴 수 있는 제품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수많은 수공예 레이스 장인들에게 재앙이었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천 명의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레이스 전통 공방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한편, 프랑스의 칼레와 영국의 노팅엄은 기계식 레이스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John Levers가 1828년~1840년 사이에 제작한 Leavers 레이스 머신 (Nottingham 산업 박물관, Wollaton Hall, Nottingham 소장) © Nottingham Industrial Museum, Wollaton Hall

John Levers가 1828년~1840년 사이에 제작한 Leavers 레이스 머신 (Nottingham 산업 박물관, Wollaton Hall, Nottingham 소장) © Nottingham Industrial Museum, Wollaton Hall

프랑스의 명품 칼레-코드리 레이스

프랑스의 알랑송, 샹티이, 리옹, 그리고 칼레 코드리에서는 지금도 고급 레이스가 생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칼레-코드리 레이스는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다. 캐서린 미들턴 왕세자비의 웨딩드레스 역시 칼레-코드리산 레이스로 제작되었으며, 전통 아일랜드와 영국 레이스 여섯 종류가 함께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난 200년간 칼레 코드리 레이스는 프랑스 북부 도시 칼레와 코드리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며 프랑스 장인 정신의 우수성을 대표해 왔다. 칼레 레이스의 기원은 영국 북부 노팅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16년, 영국 노동자들이 첫 리버스 기계를 노팅엄에서 프랑스 칼레에 몰래 들여와 정착시켰다. 19세기 내내 이 작은 마을은 도시로 성장했고, 소규모 레이스 공방은 번성하는 산업체로 발전했다.

많은 영국인이 칼레에 정착했으며, 특히 이 시기에 시작된 영국과의 정기 해상 교통 덕분에 지역 경제는 더욱 번창했다. 이들 중 다수는 가정을 이루고 칼레에 뿌리를 내렸으며, 오늘날에도 칼레 지역에는 크리스마스 푸딩과 같은 영국 전통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칼레 코드리 레이스 공장 / 사진 출처. Dentelle de Calais-Caudry® 사이트

칼레 코드리 레이스 공장 / 사진 출처. Dentelle de Calais-Caudry® 사이트

프랑스는 현재 전 세계 리버스 레이스 기계의 80%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모두가 칼레와 코드리에 집중되어 있다.

1958년, 새롭게 개발된 편직 공정을 활용한 일반 기계 레이스와 리버스 직조 레이스를 구분하기 위해 당텔 드 칼레®(Dentelle de Calais®) 라벨이 탄생했다. 이후 2015년에는 당텔 드 칼레-코드리®(Dentelle de Calais-Caudry®) 라벨로 대체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Dentelle de Calais-Caudry 라벨 / 사진. © AlphaRe/reflexlondon / Dentelle de Calais-Caudry® 사이트

Dentelle de Calais-Caudry 라벨 / 사진. © AlphaRe/reflexlondon / Dentelle de Calais-Caudry® 사이트

이 리버스 레이스는 칼레와 코드리에서만 생산되며, 프랑스 오트 쿠튀르 패션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로 꼽힌다. 칼레와 코드리에서 제작된 레이스는 뛰어난 품질과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하이엔드 패션과 고급 란제리 등 럭셔리 분야에서 널리 활용된다.

반면, 중국에서 대량 생산되는 저가의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레이스는 기성복, 저렴한 웨딩 베일, 장식용 액세서리 등에 주로 쓰인다. 이에 비해 칼레에서 전통 기법으로 제작되는 프랑스 최고급 레이스는 윤리적 소비의 확산과 패스트패션에 대한 반발 속에서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으며 사랑받고 있다.

또한, 레이저 컷 레이스나 스마트 텍스타일과 결합한 레이스와 같은 기술 혁신은 디자인과 지속 가능한 미래의 패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Tzuri Gueta 디자이너, 레이스에 실리콘을 입혀 만든 Haute Couture Collection Yiqing Yin. © Y.Yin / 사진출처. © Tzuri Gueta

Tzuri Gueta 디자이너, 레이스에 실리콘을 입혀 만든 Haute Couture Collection Yiqing Yin. © Y.Yin / 사진출처. © Tzuri Gueta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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