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는 사전 인터뷰에서 “기억력이 20대부터 안 좋았다”며 “결혼생활 땐 부부싸움 한 걸 다음날 까먹고 남편한테 환하게 인사했더니 남편이 날 이상하게 본 적도 있고, 광고주 미팅을 까먹어 장 보다 말고 미팅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프로그램 진행자(MC)로 발탁해 준 책임 피디 결혼식을 까먹은 적도 있다. 그날 아침까지 기억이 났는데 까먹고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생각났다”며 “그 이후 두 번을 더 결혼식을 까먹었다”고 토로했다.
박은혜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치매 병력을 전하며 “혹시 유전적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병원을 찾았다.검사를 진행한 의사는 “뇌 나이가 두 살 더 많고 인지 기능 저하가 있지만 치매 단계는 아니다”라며 훈련을 지속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혜의 사례는 단순 건망증이나 기억력 감퇴가 아니라, 그녀의 걱정대로 치매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 질병인 알츠하이머병 관련 위험 요인과 생물학적 지표(바이오마커)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메일맨 공중보건대학원과 컬럼비아 버틀러 노화센터가 수행한 이번 연구는 건강한 젊은 성인층(24세에서 44세 사이)을 대상으로 인지 장애 관련 바이오마커를 포함해 알츠하이머병 위험 요인을 체계적으로 조사한 첫 번째 연구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란셋-지역 건강 미국( Lancet-Regional Health Americas)에 발표했다.연구진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위험 요인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주로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위험 요인이 중년 이전에도 발현 해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연구를 주도한 제1저자 엘리슨 아이엘로(Allison Aiello) 건강장수·전염병학 교수(의학 박사)는 심혈관 건강은 물론 ATN(아밀로이드, 타우, 신경퇴행)과 면역 바이오마커와 같은 특정 알츠하이머병 위험 요인들이 40대, 심지어 그 보다 어린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도 존재하며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구 대상은 미국 청소년 집단을 성인기까지 추적 조사한 전국 규모의 대규모 종단 연구(Wave 4차와 5차 자료)를 활용했다.
4차 조사는 24~34세 1만 1449명의 데이터가 포함됐다. 이중 4507명이 가정 인터뷰, 인지 테스트, 신체검사를 받고 혈액 샘플을 제공 했다.
5차 조사는 34~44세 참가자를 대상으로 대면과 온라인·우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가정 방문 인터뷰에 응한 총 1112명은 즉각 단어 회상, 지연 단어 회상, 역방향 숫자 암기와 같은 인지 과제를 수행했다. 이중 529명이 CAIDE(심혈관 위험인자, 노화 및 치매 위험) 점수를 기반으로 한 분석 대상이 되었다. CAIDE 점수는 심혈관 위험 요인, 연령, 교육 수준, 성별, 수축기 혈압, 체질량지수, 콜레스테롤 수치, 신체 활동, APOE ε4 유전자 등으로 평가한다. APOE ε4 유전자는 가장 강력한 알츠하이머병 위험 인자다.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혈관 위험 요인: CAIDE 점수와 인지 기능 간의 유의미한 연관성이 50세 이전에도 관찰 됨.
ATN 바이오마커: 아밀로이드(A), 타우(T), 신경퇴행(N) 바이오마커 및 여러 면역 마커가 중년 이전 인지 기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
APOE 유전자: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유전적 위험 요인인 APOE는 중년기에는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이후 나이가 들어서야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
이아엘로 교수는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혈액 바이오마커가 임상 증상이나 인지 장애가 나타나기 수십 년 전부터 인지 기능의 차이와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며 “생애 전반에 걸쳐 조기 예방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알츠하이머병과 인지 장애로 이어지는 초기 경로를 노년기 이전에 파악하는 것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예상되는 알츠하이머병의 증가세를 늦추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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