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로 차남 모즈타바 유력…‘성직자’로 인정받지 못한 게 치명적 약점
이란은 명목상 이슬람 공화국일 뿐, 종교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신정체제(Theocracy) 국가다.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대통령보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지닌다. ‘신의 대리인’으로 불려온 하메네이는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의 ‘참수 작전’을 우려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반대파 탄압으로 정통성 강화한 하메네이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이란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6월 13일(이하 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가족과 함께 수도 테헤란 북동부 라비잔에 있는 지하벙커로 피신했다고 한다. 하메네이는 지난해 4월과 10월 이란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보복 작전을 수행할 때도 이곳 지하벙커에 대피해 있었다. 미국 CNN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 계획을 거부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이란의 이른바 ‘최고지도자’가 어디에 숨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그는 쉬운 표적이지만 그곳은 안전하고, 적어도 당분간은 그를 제거(사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메네이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본래 호메이니 후계자로는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라는 이슬람 시아파 최고위급 성직자도 거론됐다. 하지만 몬타제리는 호메이니가 독재 국가를 세우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것에 반발해 스스로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2009년 죽을 때까지 스스로 가택연금을 자처하며 은둔 생활을 했다.
하메네이는 집권 후 상대적으로 정통성이 약해 취약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등 폭정으로 강화했다. 특히 하메네이는 이슬람 혁명수비대를 동원해 개혁파를 철저히 탄압했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호메이니가 이슬람혁명과 신정체제를 수호하려고 창설한 제2 군대로 일종의 친위대다. 최고지도자 명령만 따르며, 정규군과 동일한 계급에 병력은 총 25만 명이다. 육해공군과 정보전 부대, 준군사조직 바시즈(Basij) 민병대가 있고, 특수부대(쿠드스군)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중장거리탄도미사일과 핵시설도 통제한다.현재 86세인 하메네이는 과거 전립선암을 앓는 등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후계자로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56)와 사법부 수장이던 에브라힘 라이시를 저울질했다. 그러다 라이시가 2021년 대통령에 당선한 후 하메네이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 라이시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라이시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이란 동아제르바이잔주 바르즈건 지역의 댐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국가 최고지도자는 86명으로 구성된 성직자 평의회인 전문가 회의(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서 선출된다. 현재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장은 강경 보수파 성직자인 모하마드 알리 모바헤디 케르마니(93)다. 국가지도자운영회의에서는 그동안 하메네이가 고령인 점을 고려해 후계자 문제를 논의해왔다. 지난해 11월 하메네이의 후계자 후보 3명을 선출해 승계 우선순위를 정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는 극비에 부쳤다.
또 다른 후계자 후보로는 알리레자 아라피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겸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이 있다. 아라피는 2000년대 초반부터 명망 있는 종교지도자로 꼽혀왔다. 그는 시아파 교리를 설파하는 핵심 기관인 알무스타파국제대 총장으로 하메네이가 직접 발탁한 인물이다. 콤에서 금요 대예배를 집전하며 이슬람 신학교 지도자로서 시아파 신학자들을 육성해왔다. 하셈 호세이니 부셰리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제1부의장이자 콤 금요 예배 지도자도 후계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美 하메네이 암살 시 승계 정당화될 수도
서방 언론들은 하메네이가 사망하거나 유고 사태가 발생하면 모즈타바가 후계자가 될 것으로 본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국민은 그동안 하메네이를 이을 유력 후보자는 라이시 전 대통령과 모즈타바라고 생각했다면서 라이시 전 대통령이 사망한 만큼 유일한 후계자는 모즈타바뿐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모즈타바는 최고지도자가 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모즈타바는 이란에서 ‘성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슬람 시아파에서 성직자는 수십 년간 학문적 업적과 동료 성직자들의 승인을 통해 정통성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모즈타바는 신학교에서 신학을 강의할 뿐이고, 이슬람 율법에 대한 해석 등 학문적 연구를 한 적이 없다. 호메이니가 만든 이란 헌법 제5조에는 “이슬람 공동체를 통치하고 이끄는 과업은 공정하고 독실한 종교지도자에게 위임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따라 이란에서 최고지도자는 성직자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국민이 이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권력 세습은 이슬람혁명 정신에 위배된다. 이슬람혁명은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면서 세습통치를 종식했다는 의미가 있는데, 세습통치가 이뤄진다면 왕정체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란 국민은 신정체제에 따른 권위주의 통치와 제재로 인한 경제난, 만성적인 민생고, 여성 차별, 인권과 언론 탄압, 부정부패 등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특히 젊은 층은 민주주의 등 개혁을 요구하며 권력세습에 반대해온 만큼 봉기할 가능성도 있다. 모즈타바가 국민의 반발을 막고자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할 경우 유혈사태 등 엄청난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서방 언론들은 “이슬람혁명으로 수립된 이란 신정체체가 존속의 갈림길에 섰다”고 지적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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