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평일 서울역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KTX 일반석 가격은 평균 5만5000원으로, 같은날 수서발 SRT 가격(5만1900원)보다 10% 정도 비싸다. 이런 기찻값은 SRT가 첫 운행을 시작한 2016년 12월 9일 이후 약 9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같은 기간 이들 공기업의 누적 적자는 수조원 규모로 불어났다. 임직원은 되레 4300여 명 늘었다.
◇ 노선 중복·사업 비효율로 적자 눈덩이
정부는 2016년 12월 “117년 한국 철도 역사에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SRT 운행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9년이 흐른 현재 전문가들은 “실패한 공공기관 개혁 사례”라고 혹평한다. 정부의 가격 통제로 경쟁 인센티브가 사라진 가운데 노선 중복 운영에 따른 비효율과 비용만 눈덩이처럼 늘어났다는 이유에서다.
SR은 출범 당시부터 ‘기형적’이라고 비판받았다. 코레일과 경쟁하는 회사인데 코레일의 자회사로 설립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민간 사업자에게 고속철도 사업 면허를 부여하는 방식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민영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런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SRT 운행 초기엔 SRT가 기찻값을 비슷한 노선의 KTX보다 10~15%가량 낮게 책정하고, KTX가 이에 대응해 ‘마일리지 제도’를 부활하는 등 기관 간 경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정부가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KTX 가격을 장기 동결하자 경쟁을 벌인 인센티브가 사라졌다. 코레일은 SRT와 달리 수익을 내기 어려운 지방 노선도 유지해야 했다.
경쟁체제 도입 후 사업 구조의 비효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코레일과 SRT는 천안 아산~부산 등 핵심 철도 노선을 공유하고 있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합운행계획 부재로 부산역에 도착한 KTX가 곧바로 서울로 출발하지 못하고 수서행 SRT 출발을 기다리는 상황 등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노선 통합 운용만으로도 연간 고속철도 운행 좌석이 500만 석(5%)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철도 차량 유지·정비 구조도 비효율이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SR은 차량 임대와 정비, 관련 시스템 개발 등 핵심 업무를 경쟁사인 코레일에 위탁하고 있다. 이런 위탁 비용으로 SR이 매년 내는 돈이 1700억원에 달한다.
경쟁을 막는 이런 구조적 요인이 생겨나자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성을 높이려는 인센티브도 낮아졌다. 이익이 줄고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두 기관의 인력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이유다.
◇ 노조 “인력 구조조정은 반대”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으로 “이원화된 고속철도 통합으로 국민 편익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 고속철도 통합 논의에 착수했다. 노조 측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원론엔 동의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입장차가 매우 크다. 민주노총 산하 코레일 노조는 “기관 통합 후 운영 효율화 등으로 고속철도 요금을 10% 인하할 여력이 있다”며 “6개월 내 통합 절차를 마무리하자”고 주장한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은 두 기관 통합 시 파업 등 노조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전했다.
코레일에 흡수될 것으로 예상되는 SR은 통합에 거세게 반발한다. SR의 한 관계자는 “2030년 평택의 SRT 전용 차량기지가 완성되면 KTX와 본격적인 경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우선 KTX와 SRT가 교차 운행으로 시너지를 내고 이후 입장차를 조율하면서 통합 절차를 이어가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방안은 시너지가 크지 않고, 조직 통합 시기가 무기한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