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처음엔 6주짜리 단기 알바였다. 기대치는 낮았다. 그저 부상당한 외국인선수의 빈자리를 잠깐 메워주면 됐다. 한국에 온 지 약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는 ‘대전 예수’로 불린다. 팬들은 ‘미국으로 못돌아가게 여권 뺏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도 그를 주목한다. 주인공은 한화이글스 외국인투수 라이언 와이스(2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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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투수가 된 뒤 응원단상 위에서 어린이 팬과 인터뷰를 하는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사진=한화이글스 |
와이스는 지난해 6월 당시 외국인투수 리카르도 산체스의 부상 대체 선수로 한화에 합류했다. 부상 대체 선수는 계약기간이 6주다. 기존 외국인 선수가 회복해 돌아오면 부상 대체 선수는 계약 종료 전이라도 팀을 떠나게 된다. 말 그대로 ‘단기 알바’다.
와이스는 달랐다. 계약 기간 동안 6경기에서 1승 1패 평균자책점 4.18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한화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기존 외국인선수를 포기하고 아예 와이스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코리안 드림’의 시작이었다.
한화에서 보낸 2024시즌 와이스는 16경기에 나왔다. 성적은 5승 5패 평균자책점 3.73. 총액 95만 달러(약 13억 원) 조건의 2025시즌 재계약으로 이어졌다.
와이스는 코디 폰세와 함께 올 시즌 한화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4경기에 등판해 8승 2패 평균자책점 3.09를 기록 중이다. 다승은 공동 2위, 탈삼진은 4위(100개)다. 어떤 투수와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와이스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당연하다.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화 팬 얘기만 나오면 미소가 떠날 즐 모른다. 바로 엄지척이다. 그는 “한화팬들은 전 세계 넘버원”이라고 추켜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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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가 만루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이원석을 환하게 웃으며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한화이글스 |
경기장 밖에서 팬들과 스킨십도 즐긴다. 팬들의 사인 공세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다 받아준다. 아내인 헤일리도 ‘친한파’가 됐다. 한국에 처음 온 이후부터 꾸준히 SNS에서 한국 생활과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부기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방문한 뒤 사진과 글을 올렸다. 헤일리는 “한국이 일본에 강제 점령당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 기간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몰랐다”고 솔직한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와이스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그저그런 투수였다. 메이저리그는 밟아본 적이 없었다. 마이너리그 성적도 평범했다. 전문 선발투수로 활약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와이스는 한국에서 야구에 눈을 떴다. 시즌이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150km대 강속구와 주무기 스위퍼, 너클 커브 등은 위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야구를 대하는 태도다. 와이스는 외국인선수지만 배우는 자세가 남다르다. 손혁 한화 단장은 와이스의 성장에 대해 “폰세와 류현진의 좋은 점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손 단장은 “메이저리그 경험이 풍부한 류현진과 폰세는 상대 팀과 타자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하고 전략을 준비한다”며 “와이스도 그런 모습을 보고 따라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구단도 와이스에게 관심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오른쪽 타자 바깥으로 날카롭게 휘어나가는 스위퍼는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으로 본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2년 전 한국에서 성공한 뒤 메이저리그로 컴백한 에릭 페디를 보는 것 같다”며 “시즌이 끝나고 그에 대한 구단들의 관심이 클 것”이리고 봤다.
와이스는 늘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는 “항상 야구장을 가득 메워주는 한화이글스 팬들 덕분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며 “팬들이 재미있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에 대해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지금은 한화와 KBO리그에 대한 생각 뿐”이라면서 “팀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우승하는 것만 생각한다. 지금 현재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