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AC(냉난방공조)는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세계 곳곳에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AI데이터센터의 성능을 관리하는 핵심은 냉방 시스템이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3016억달러(약 415조원)이던 HVAC 시장은 2034년 5454억달러(약 750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성장성이 높다. 이 시장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가전 기업들이 본격 드라이브를 걸면서 글로벌 업계 간 경쟁도 달아오를 전망이다.
◇AI데이터센터용 HVAC가 핵심
삼성전자는 지난달 14일 15억유로(약 2조3000억원)를 들여 유럽 최대 HVAC 기기 업체인 플랙트그룹을 인수했다. 플랙트그룹은 데이터센터, 공장 클린룸, 산업·주거용 건물 등 여러 시설에 냉각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2017년 9조3000억원에 오디오·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한 뒤 8년 만의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다. 지난해 상반기엔 존슨컨트롤스 HVAC 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보쉬에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대형 M&A에 나선 건 HVAC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최적의 결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그간 생활가전(DA)사업부의 에어솔루션비즈니스팀을 주축으로 HVAC 사업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2014년 미국 시스템에어컨 유통 전문회사 콰이어트사이드를 인수하고, 지난해 미국 HVAC 기업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몸집을 키웠지만 한계가 있었다. 일반 가정과 중소 빌딩용 시스템에어컨 중심의 ‘개별 공조’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플랙트그룹 인수는 개별 공조뿐 아니라 AI데이터센터 등 산업용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할 기회가 될 수 있다.
LG전자는 M&A보다 자체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조직 개편에서 공조 사업을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에서 떼어내 에코솔루션(ES)사업본부로 옮기며 핵심 사업으로 격상했다.
주력 제품은 칠러다. 외부 공기로 시원한 바람을 만드는 칠러는 서버 등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을 액체로 식히는 ‘액체냉각’과 함께 HVAC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품목이다. 최근 AI데이터센터 건립 붐에 힘입어 칠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대용량 제품인 터보 칠러 분야에서 국내 1위, 세계 5위에 올랐다. 2011년 LS엠트론 공조사업부를 인수해 이 시장에 뛰어든 지 13년 만에 거둔 성과다.
LG전자는 칠러에 전 세계 기업 중 유일하게 독자 개발한 무급유 자기(磁氣) 베어링 기술을 적용했다. 이 덕분에 최근 3년간 매년 15% 이상 매출이 늘었다. 올 1분기 공조사업(ES사업본부) 매출은 3조544억원, 영업이익은 406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 21% 늘어난 수치다.
◇누가 먼저 승기 잡을까
글로벌 HVAC 시장은 존슨컨트롤스(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트레인(미국), 다이킨(일본), 캐리어(미국) 등 전통 강자들이 이미 잡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뒤늦게 뛰어들며 글로벌 기업 간 각축전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시장의 성장성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AI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공조 시장은 지난해 168억달러에서 2030년 441억달러로 연평균 증가율이 18%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플랙트그룹을 중심으로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찾기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빌딩 통합 제어솔루션(b.IoT, 스마트싱스)과 플랙트그룹의 공조 제어솔루션을 결합해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대표적이다. 공항, 쇼핑몰, 공장 등 국내외 대형 시설을 대상으로 영업·서비스를 강화해 종합 HVAC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LG전자는 성장성이 큰 북미와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6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신규 HVAC 공장을 설립해 제품을 생산 중이다. 미국 빅테크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사티아 나델라 MS CEO를 만나 MS의 데이터센터에 냉각 솔루션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LG전자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공조사업 매출을 지금의 약 두 배인 20조원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