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700명 모이는데 "잘 곳이 없어요"…경주 난리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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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찬장 공정률 10% > 지난 18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 중앙마당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 조성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날 기준 공정은 10%로 아직 기초 터파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김다빈 기자

< 만찬장 공정률 10% > 지난 18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 중앙마당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 조성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이날 기준 공정은 10%로 아직 기초 터파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김다빈 기자

오는 10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에 초비상이 걸렸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대통령선거가 이어지는 동안 정부 의사 결정이 사실상 멈췄고, 그 여파로 정상회의 만찬장 건설, 숙박시설 확충 등이 줄줄이 늦어졌다. 25일 경상북도에 따르면 APEC 행사의 꽃으로 불리는 정상 만찬장 공정률은 이날 기준 10%에 불과하다. APEC 행사의 주요 시설인 국제미디어센터와 경제전시장 공정률도 각각 30%, 15% 수준이다.

4개월 남았는데 이제야 터 닦는다…경주 APEC '초비상'

21개 APEC 회원국 정상 초청장은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발송되지 않았다. 초청장은 의장국 정상의 이름으로 보내는 것이 관례지만, 대통령 탄핵 사태로 발송 주체가 공백 상태였다. 이 때문에 주요국 정상의 참석 여부를 비롯해 수행 인력 등 전체 참석 인원이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숙박시설 준비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APEC은 21개 회원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인이 모여 역내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국제 행사다. 한국은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에 의장국으로 행사를 주최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APEC은 한국의 이미지와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대형 외교 행사”라며 “준비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이제라도 숙소 등 기반 시설 확충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CEO만 700명 오는데…정상 스위트룸 확보 '발등의 불'
부지 선정만 석달 밀린 만찬장, 600명 수용하기엔 턱없이 협소

지난 18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 중앙마당에선 오는 10월 말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클레인 2대가 쉬지 않고 흙을 퍼 올렸고 근로자 13명은 터를 다지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지만 행사 4개월을 남겨둔 현재 공정은 10%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약 8.6㎞ 떨어진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부지에 조성 중인 미디어센터 역시 철골 골조만 세워진 채 기초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 늑장 결정에 공사 지연

9월 완공이 목표인 국제미디어센터는 장마 등 기상 악화 시 공사 지연이 우려된다. /김다빈 기자

9월 완공이 목표인 국제미디어센터는 장마 등 기상 악화 시 공사 지연이 우려된다. /김다빈 기자

25일 경상북도에 따르면 만찬장 부지 선정은 당초 작년 12월까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월정교, 황룡원, 동궁과 월지 등 네 곳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부 의사 결정이 사실상 멈추면서 결정이 미뤄졌다.

경북도 APEC 준비지원단은 작년 11월부터 중앙정부에 만찬장 부지를 결정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결국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월 10일 현장을 둘러본 뒤 같은 달 21일 총리 주재 회의에서 약 3개월 만에 국립경주박물관 중앙마당이 최종 부지로 확정됐다. 이후 유물 발굴 조사와 실시설계 등을 거쳐 5월 말이 돼서야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APEC 정상회의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만찬장 공사는 시작됐지만 공간이 협소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중앙마당에 건설되는 만찬장은 약 2000㎡로 600명을 수용하게 된다. 1인당 확보 면적은 3.3㎡다. 2005년 부산 APEC 당시 만찬장으로 활용된 벡스코 1전시장(4396㎡·1000명 수용)이 1인당 약 4.4㎡를 제공했던 것보다 좁다. 만찬장 내부에 공연 무대까지 들어서면 실제 체감 면적은 더 줄어든다.

행사 기간 취재진 4000여 명이 이용할 국제미디어센터 공정도 30%에 그친다. HICO 부지에 새로 짓는 이 시설은 행사 한 달 전 완공이 목표다. 그러나 장마와 태풍 등 기상 악화 시 공사 지연이 우려된다. 경북도 관계자는 “정상회의장은 HICO 내부 리모델링으로 기상 영향을 덜 받지만 국제미디어센터는 야외 공사이기 때문에 장마 기간 폭우가 ㅈ오면 공사가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CEO만 700명…고급 호텔 태부족

4개월 남았는데 이제야 터 닦는다…경주 APEC '초비상'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묵을 숙소(PRS·프레지덴셜 로열 스위트)도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북도는 기존 호텔의 PRS 16개를 정비하고 기존 객실 리모델링을 통해 9개를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이 중 코오롱호텔과 코모도호텔은 6월에 발주가 이뤄도 아직 착공조차 못한 상태다. 이 밖에도 경북도는 준PRS 10개와 스위트룸 300개를 7월 말까지 확보할 방침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이번 APEC 행사 기간 CEO만 약 700명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인 전체 규모는 최대 38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도가 예상하는 인원인 1700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규모다. 경북도가 준비한 PRS와 스위트룸을 전부 동원해도 대한상의가 예상하는 CEO를 수용하는 데 크게 부족해 자칫 숙박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주에는 5성급 호텔이 힐튼경주(330실)와 라한셀렉트(440실) 두 곳뿐이다. 경북도는 낡은 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소노캄과 더케이호텔 전면 리모델링에 착수했으나 나머지 호텔은 PRS에 한해 제한적 리모델링만 하기로 했다. 대한상의는 부족한 고급 객실을 보완하기 위해 부산·울산 등 인근 지역 호텔을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경주 숙소 대부분이 가족여행이나 기업 연수용으로 설계돼 글로벌 기업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고급 객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경주까지…접근성도 문제

접근성 문제도 남아 있다. 2월 경주에서 열린 APEC 고위관리회의(SOM) 행사 참석자의 60%는 김해공항으로 들어왔지만 40%는 인천공항을 이용한 뒤 서울역에서 KTX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APEC 기간 서울역에서 경주역까지 무정차 KTX를 운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운행 스케줄로는 서울역에서 경주역까지 2시간15분이 걸리지만 무정차 KTX를 도입하면 1시간 이내 이동이 가능하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 방한 당시 서울~부산 구간 무정차 KTX를 운행한 바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역~경주역 노선에서 KTX·SRT 증편, 전용 열차 투입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까지 정확한 방문객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워 구체적인 계획 수립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경주=김다빈/오경묵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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