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 = 불법파견' 공식 깬 대법원 판결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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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 = 불법파견’ 공식 깬 대법원 판결 살펴보니…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는 말은 꼭 사람에게만 쓰는 말은 아니다. 어떠한 외관이다 현상만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그 내면과 실질을 들여다보아야 평가와 판단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이는 법률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보다 그 실질을 중요시하는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최근 협력업체 직원에 대한 대규모 직고용 뉴스가 지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 비교적 주목을 덜 받았지만, 제철소 내 사내도급으로 운영된 포장업무가 불법파견인지 문제된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서울고등법원 2026. 1. 30. 선고 2024나2034031 판결, 상고심 계속 중)과 대법원(대법원 2026. 4. 16. 선고 2022다225606 판결)이 잇따라 적법도급을 인정한 것은 겉만 보기보다는 속을 깊숙이 들여다 보고 판단한 대표적인 예에 해당할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사내도급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환송함으로써 적법도급을 인정한 예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라 시사점이 크다.

우선, 이 사건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살펴본다. ‘일관제철법’, ‘전체 공정 연계’, ‘컨베이어벨트’, ‘포장작업은 생산 및 출하공정에서 필수적인 작업’, ‘MES 사용’, ‘실시간 모니터링’, '포장 물량과 생산량의 연동', ‘공동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음’, ‘작업표준서에 따른 작업’ ‘작업표준서에 구체적인 순서, 도구, 유의사항 기재’, ‘작업사양서’, ‘일별 포장 실적과 휴식시간을 원청이 확인’, ‘3조 3교대 근무 통보’ 등.

위 키워드들을 복사해서 어떤 회사의 제품이든 AI에 넣어 돌려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십중팔구 불법파견의 징표라는 취지의 답이 나올 것이다(실제로 돌려보니 그랬다). 그리고 일부 하급심판결도 위와 같은 키워드로 설명되는 사실관계를 중요하게 고려하여 불법파견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이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주목하면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 크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특징이 있다.

먼저, 소위 원청인 제철소는 설립 이래 포장업무를 해본 적이 없고, 처음부터 외부 협력업체가 포장 업무를 담당하여 왔다.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상당수의 케이스에서는 원래 원청이 하던 업무가 어느 시점 이후로 외주화되어 운영된 경우가 많은 것과의 뚜렷한 차이점이다. 원청으로서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고 싶어도 뭘 알아야 지시를 할텐데, 포장에 대하여 경험이나 기술이 없으니 지시를 제대로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고, 고객의 요구사항(포장사양)을 전달하거나 협력업체와 협업하여 수십년간 이어져 온 작업내용을 표준화 해놓은 것이 거의 전부다.

다음으로, ‘포장’ 업무의 특징이다. 말 그대로 물건을 싸는 것인데, 업무 특성상 생산이 완료된 이후에 작업 이루어 질 수밖에 없어 생산공정과의 연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철강제품을 포장하는 이유는 이를 주문한 고객사로 이동(수출)하는 과정에서 부식이나 훼손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점에서도 생산공정과는 업무의 성격이 다르다. 작업에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공정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포장을 제때 못했다고 해서, 혹은 좀 잘못 포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하면 되지) 그 내용물에 변화가 발생하거나 생산공정으로 다시 돌아가 재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가 활용되기는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원청이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니 때문에, MES는 고객사가 요구하는 포장사양을 전달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부수적으로 작업물량과 일정을 관리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다만, 고객사가 다양한 만큼 고객사가 원하는 포장 방법이 다양하고, ‘포장’ 업무를 위탁하고 비용을 지급하기로 한 이상 알아서 임의로 포장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어떤 자재를 활용해서 어떤 방법으로 포장을 해달라는 요청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고 협력업체 입장에서도 그런 정보를 받지 못하면 일을 하기가 어렵다.

결국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위와 같은 점들에 주목하여 불법파견을 인정한 원심판결과 달리 적법도급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두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협력업체의 독자성과 실체성의 중요성이다. 그 동안 불법파견 여부가 쟁점인 소송에서는 지휘·명령과 실질적 편입이 주로 불법파견의 징표로 검토되어 왔고, 협력업체의 독자성이나 실체성은 중요도가 떨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은 “피고는 포장작업을 직접 수행한 적이 없다”라는 점을 먼저 명확히 밝힌 후 협력업체가 오랜 기간 독자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포장설비를 설치하고 작업과 관련한 특허를 출원하며, 원청에 포장규격과 사양의 개선이나 변경을 제안하기도 한 점을 들어 원청이 작업표준서 등을 통하여 업무수행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협력업체의 독자성 및 실체성의 본질을 들여다 볼 때 작업정보 공유와 같은 외관이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의 징표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무조건적인 ‘MES = 불법파견’ 공식이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본건 포장업무 수행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하급심판결은 MES를 통하여 포장 관련 정보가 전달되고, 협력업체에서 해당 정보대로 작업을 하는 것을 상당한 지휘·명령의 징표로 보았으나,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MES에서 전달되는 정보인 포장사용의 내용에 따라 작업내용에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고, 포장사용 자체에 협력업체가 적극 참여하며 포장업무의 특성상 포장사양의 유형 및 포장규격에 관하여 동일한 기준을 공유할 필요가 있으므로(즉 정보전달 및 공유에 불과하다는 뜻) MES 활용이 불법파견의 징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역시 MES 활용이라는 외관이 아닌 그 목적과 내용이라는 본질에 중요시한 판단이다.

그밖에도 대상 판결을 통하여 도급과 파견의 구별기준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특히 법원 판결의 내용이 엇갈릴 정도로 경계선상에 있는 업무에 관하여 어느 요소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등에서도 적지 않게 참고할 만한 점들이 있으나, 위와 같이 협력업체의 독자성과 실체성, MES의 불법파견 징표에서의 제외는 유사한 쟁점의 소송에 임하는 사용자 측에서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요인들인데, 이번 사례를 통하여 그 본질로서 외관을 깰 수 있게 됨으로써 향후 많은 사건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인사노무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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