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근대음악 거장 라벨의 대표곡, 미묘한 심리극으로 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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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볼레로: 불멸의 선율’ 30일 개봉
탄생 150주년 라벨의 삶-작품 조명
주요 인물 3명의 ‘3중주’ 연상케 해

 불멸의 선율’에서 작곡가 모리스 라벨 역을 맡은 라파엘 페르소나(왼쪽)와 무용가 이다 루빈슈타인 역의 잔 발리바르. 찬란 제공

영화 ‘볼레로: 불멸의 선율’에서 작곡가 모리스 라벨 역을 맡은 라파엘 페르소나(왼쪽)와 무용가 이다 루빈슈타인 역의 잔 발리바르. 찬란 제공
올해는 프랑스 근대음악의 거장 모리스 라벨(1875∼1937)이 탄생한 지 150주년이 된다. 동시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스위스 시계공 같다’고 평한 라벨의 음악은 극한의 정밀한 리듬감과 뜬구름 같은 몽환적 세계 사이를 오간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면서 가장 ‘라벨 같지 않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 그의 관현악곡 ‘볼레로’(1928)다.

안 퐁텐 감독의 ‘볼레로: 불멸의 선율’은 두 세계대전 사이인 파리의 예술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이 작품의 탄생 과정과 라벨의 삶을 담아낸 음악 전기영화다.

영화는 세 주요 등장인물의 3중주를 연상시키는 미묘한 심리극으로 전개된다. 작곡가 라벨(라파엘 페르소나), 그에게 발레음악으로 볼레로를 의뢰한 무용가 이다 루빈슈타인(잔 발리바르), 당대 파리 예술계의 대모이자 뮤즈였던 미시아 세르(도리아 틸리에)다. 로마 대상 다섯 번의 탈락,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 어머니의 죽음 등 라벨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과 가장 어두웠던 시간들이 교차하며 ‘볼레로’가 탄생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2009년 영화 ‘코코 샤넬’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퐁텐 감독은 무용수 출신의 경력을 살려 라벨을 둘러싼 예술계의 분위기를 그려냈다.

라벨의 모습이 담긴 무성영화 자료를 연구하며 자세와 움직임까지 재현했다는 페르소나의 연기는 이 작곡가의 엄격한 자기 평가가 가져온 강박증과 내성적 측면에 초점이 쏠리지만 다소 단선적으로 느껴진다. 화면에 가장 생명력을 불어넣은 인물은 발리바르가 연기한 루빈슈타인이다. 스스로 야심 많은 한 예술가이자 공연계에서 뼈가 굵은 기획자로서 강한 의지와 의도된 도발로 주변을 장악하는 여성 무용가가 섬세한 배색의 팔레트처럼 표현됐다.

영화는 시작 부분부터 다양한 편성과 스타일로 연주되는 ‘볼레로’를 보여주면서 이 작품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 변주되는 ‘밈’임을 강조한다. 영화 속에서 라벨은 이렇게 말한다. “그 음악이 내 다른 작품을 다 잡아먹잖아.” 그 말은 진실이다. 라벨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이국적이고 독특한 색채를 지닌 이 작품은 이 정밀한 작곡가에 대한, 얼마간 고정된 시선을 제공해 왔다. 다행히 영화에서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연주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과 관현악곡 ‘라 발스’ 등 다른 작품들도 들을 수 있다.

두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가 직전 시대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이른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기)와 큰 차별성 없이 안온하고 평화롭게만 그려진 점은 아쉽다. 실제 이 시대는 본격적인 산업화에 따른 노동계급의 대두와 모더니즘이 역동적으로 분출되던 때였다. 군중이 등장하는 장면도, 당대 대도시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도 없다. 실제 라벨의 인생은 독주곡 같은 간명함부터 1차대전 전후의 대(大)관현악적인 측면까지 담긴 삶이었고 ‘볼레로’ 자체도 관현악 작품이지만 이 영화의 인상은 시종일관 실내악적이다. 30일 개봉.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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