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질환 패러다임 바뀌는데…
백혈구 희귀병 앓던 美 10대 청소년… ‘프라임에디팅’ 기술로 면역 정상화
기존 교정술보다 정밀성 높아 주목… 국내선 4년간 임상 승인 단 1건
체외교정만 허용한 규제 장벽 탓… “소아 희소질환 치료할 기회 놓쳐”
● 유전자 가위로 유전질환 치료 현실화 ‘성큼’
25일 학계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팀은 중증 카바모일인산합성효소-1(CPS-1) 결핍증을 앓던 생후 10개월 아기를 대상으로 맞춤형 유전자 교정 치료에 성공한 연구 결과를 15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발표했다. CPS-1 결핍증은 130만 명 중 1명꼴로 나타나는 희소 유전질환으로 간 효소 이상으로 암모니아가 체내에 축적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기존 치료법인 간 이식은 신생아에게 적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2020년 노벨상을 받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의 일종인 베이스 에디팅(base editing) 방식을 활용해 결함이 발생한 유전자의 염기 서열만 정밀하게 교정했다. 올해 2월 첫 치료를 시작한 아기는 이후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다. 환자의 유전자 결함을 분석한 뒤 이에 맞춰 유전자 교정 도구를 ‘맞춤 제작’하는 치료법이 시행된 첫 사례다.미국 바이오 기업 프라임메디슨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최신 기술로 분류되는 프라임 에디팅을 사용해 희소 질환인 만성 육아종성 질환(CGD)을 앓는 10대 청소년에게 치료를 시행했다. 환자의 혈액 줄기세포를 체외에서 유전자 교정한 뒤 다시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유전자 결함으로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의 살균 기능이 떨어지던 환자는 치료 한 달 만에 면역 기능이 회복됐다. 호중구 세포 중 약 3분의 2에서 정상 효소 기능이 회복된 것이다.
프라임 에디팅은 DNA를 자르는 방식의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이나 DNA를 화학적으로 편집하는 베이스 에디팅보다 정밀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DNA를 삽입·교체·삭제하는 것도 가능해 차세대 유전자 교정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처음 등장할 당시만 해도 정확도가 낮고 DNA 손상 위험이 우려됐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양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 국내선 임상 연구·시험도 어려워 국내에선 김진수 KAIST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유전자 가위 권위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임상 연구·시험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유전자 치료 임상 연구·시험 승인 자체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21년부터 2025년 2월까지 국내 첨단재생의료 임상 연구·시험 승인 과제 174건 중 유전자 치료 과제는 단 1건에 불과하다.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한 규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현행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체외(ex vivo) 유전자 교정만을 허용하고 있으며 체내(in vivo) 교정은 제도권 밖에 머물고 있다. 체외 교정 방식은 환자마다 세포를 꺼내서 교정하고 다시 넣는 절차를 거쳐 비용과 시간 소모가 크다. 간, 눈, 뇌처럼 세포를 꺼내기 어려운 장기는 접근 자체가 어렵다.
반면 체내 교정 방식은 유전자 가위를 곧바로 몸 안에 집어넣기 때문에 여러 장기에 접근할 수 있다. 같은 약제를 여러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어 경제성도 좋다. 이번에 프라임 에디팅 기술로 치료에 성공한 프라임메디슨 또한 향후 체내 교정 방식으로 치료제 개발을 확대할 계획이다.
엄격한 임상 연구·시험 규제로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혁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회장은 “망막 질환을 비롯한 소아 희소 질환에서 유전자를 체내에 직접 전달하는 체내 유전자 치료는 필수적”이라며 “기술 발전을 뒷받침할 법·제도 정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희소 질환자들은 국내 치료 기회를 계속 놓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눈 뒤쪽 깊은 곳에 위치한 신경조직인 망막은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세포를 체외로 꺼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유전자 교정이 이뤄진 세포를 다시 이식한 뒤 정확한 위치에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는 이달 유전자 치료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 회장은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정책위원회에 제안서를 보냈지만 유관 부처를 포함해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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