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기업인 티빙과 웨이브 간 임원겸임 방식의 기업결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는 두 회사에서 임원이 겸임하면 결합상품이 출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2026년까지는 현행 요금제를 유지하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공정위는 CJ ENM과 티빙의 임직원이 웨이브의 임원도 겸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출한 기업결합 신고에 대해 국내 유료구독형 OTT 시장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우려가 있다 판단했다고 10일 밝혔다. CJ ENM과 티빙은 웨이브 이사 8인 중 대표이사를 포함한 5인, 감사 1인을 자신의 임직원으로 지명하는 내용을 지난해 말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임원 겸임이더라도 OTT 사업에서 시장 지배력이 집중되는 수평결합 효과가 발생한다고 봤다. CJ ENM과 티빙이 속한 CJ와 웨이브를 운영하는 SK가 합쳐지는 효과도 일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결합상품을 판매해 구독료를 올릴 가능성이 높고, 소비자 선택권도 저해된다는 게 공정위의 우려다. 넷플릭스·티빙·쿠팡플레이·웨이브 등 OTT 상위 4개 업체가 이번 결합으로 사실상 3개 업체로 재편되는 효과가 나타나면서다. 공정위는 양사 모두 충성 구독자층이 상당하고 독점 콘텐츠 제공으로 구독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낮은 편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때문에 공정위는 티빙과 웨이브가 운영하는 요금제를 이날부터 내년 말까지 유지하는 행태적 시정조치를 내렸다. 만일 이행기간 동안 양사가 통합 서비스를 내는다면 △현행 요금제와 가격·서비스 내용이 유사할 것 △현재 가입자가 통합 서비스 출범 이후 해지한 후 1개월 이내에 재가입을 요청할 경우 허용할 것 등의 조건도 붙였다.
다만 공정위는 CJ 소속회사들이 제작하는 방송·영화 콘텐츠들이 티빙과 웨이브에 공급되는 데서 발생하는 '수직결합 효과'와 SK가 이동통신 및 디지털 유료방송 사업을 함께 영위하면서 결합 상품을 판매해 나타나는 '혼합결합 효과'는 미미하다고 봤다.
공정위 관계자는 "OTT간 수평결합 때문에 발생하는 가격 인상 효과를 사전적으로 차단하고, 콘텐츠 수급·제작 역량을 높이기 위한 결합 취지를 살린 조건부 승인이라 소비자 후생 증가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에서 행태적 조치를 부과한 첫 사례라고도 설명했다. 이 제도는 공정위가 직접 시정안을 설계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 정보를 잘 아는 기업이 스스로 경쟁제한 우려 해소 방안을 제출토록 유도하는 제도다. 지난 3월 ‘시높시스-앤시스 기업결합’이 이 제도를 통해 자산 매각 등 구조적 조치를 부과한 첫 사례였다면 이 건은 가격 상승을 억누르는 행태적 조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