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화월드 내 고급 한식당 ‘제주선’은 지난달 식당을 리뉴얼 한 뒤 한정식 메뉴 가격을 확 떨어뜨렸다. 당초 1인 기준 최저가가 6만9000원부터 시작했으나, 2만8000원으로 조정했다. 갈치구이 등 원가가 비싼 것을 일부 빼긴 했지만, 기존 상차림과 큰 차이는 없다. 여기에 제주 도민 할인 15%, 이벤트 할인 30% 등 다양한 할인까지 도입했다. 김지훈 제주선 셰프는 “가격을 낮춘 뒤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며 “사실상 마진 없이 파는 것이지만 제주는 비싸다는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고 했다.
가격 저렴한 올레시장, 평일에도 북적북적
제주도의 ‘바가지 물가’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비계 삼겹살, 순대 6조각 2만5000원 등 가격 이슈가 크게 불거지면서 관광객이 급감한 영향이 크다. 관광객이 몰리는 주요 호텔과 리조트 뿐 아니라 시장 상인과 동네 식당까지 합세해 ‘착한 가격’ 확산에 나섰다.
지난 21일 제주의 서귀포 올레시장. 평인인데도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이 곳은 제주도에서 비교적 먹거리 가격이 저렴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실제로 그랬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횟집에선 고등어와 광어, 갈치 등이 담긴 모듬회가 3만~3만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2~3명이 먹을수 있는 크기였다. 제주에서 많이 잡히는 딱새우는 22마리에 1만원이었다. 서울에서 먹는 가격의 절반 수준이었다. 상차림 비용은 4인 한 테이블 당 1만원으로 정액이다. 여기엔 야채와 초장, 매운탕 등이 다 포함됐다.
제주에서 가장 번화가인 노형동 일대도 비슷했다. 이 일대 오겹살 집은 대체로 1인분에 2만원 안팎인데 서울 물가와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저렴했다. 비계 삼겹살 이슈가 있었던 탓인지 흑돼지 오겹살 집에 방문했더니 직원이 일일이 고기 상태를 보여주고 구워줬다.
특급 호텔도 ‘가격 파괴’를 시도 중이었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복합리조트 드림타워 내 최고층 38층에 들선 ‘포차’가 대표적이다. 5성급 호텔인 그랜드 하얏트가 운영하는 포차 느낌의 주점인데, 인테리어만 포차 느낌인 게 아니라 가격도 포차 수준이었다. 메뉴 가격이 대부분 1만~2만원대다. 이 호텔 관계자는 “제주 시내와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최고급 레스토랑 입지로 적합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저렴한 주점을 넣었다”고 했다.
본격 개장을 앞둔 제주도 내 주요 해수욕장들도 바가지 가격 없애기에 동참했다. 올 여름 파라솔 대여료를 2만원, 평상 대여료를 3만원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과거엔 평상 대여료를 6만원 안팎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반값으로 확 낮춘 것이다.제주도 내 주요 관광지 일부도 가격을 내렸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베니스랜드가 입장료를 기존 1만2000에서 1만원으로(성인 기준) 낮춘 것을 비롯해 제주허브동산, 세계자동차&피아노박물관 등이 최근 1년 새 입장료를 인하했다. 또 마라도 여객선도 가격을 일부 내렸다.
올 들어 내국인 관광객 15% 감소…“비싸서 안간다”
제주도 주요 상권에서 가격이 낮아진 것은 무엇보다 비싼 가격에 대한 관광객들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이로 인한 관광객 감소 탓이 크다.
올 들어 3월까지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약 274만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12.9% 감소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같은 기간 4.5% 증가했음에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내국인이 15% 넘게 급감한 탓이었다. 특히 지난 3월 기준 관광객은 약 93만명으로, 2022년 3월 이후 3년 만에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내국인들이 제주를 외면하는 주된 이유로 꼽히는 것이 높은 가격이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지난 3월말 공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를 방문한 내국인의 항목별 만족도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게 자로 ‘여행 경비’였다. 여행 경비에는 관광지 물가와 식당 가격 등이 포함됐다. 자연 경관과 음식, 숙박 등의 항목에선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너무 비싸서 또 못 오겠다”는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관광객 감소가 바로 가격에 반영된 게 비행기 티켓이다. 스카이스캐너 등 가격 비교 사이트에선 최근 2~3년 새 자취를 감췄던 특가 항공권이 다시 풀리고 있다. 김포에서 제주까지 가는 비행기가 2만~3만원대에도 나온다. 제주 시내 주요 호텔들도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객실 점유율이 급격히 낮아진 영향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신라호텔의 경우 객실 점유율이 올 1분기 58%까지 낮아졌다. 작년 1분기 67%에서 9%포인트나 낮아진 것이다. 같은 기간 서울 신라호텔 점유율이 64%에서 73%로 크게 오른 것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한 호텔 관계자는 “5성급 특급호텔은 이미지 탓에 가격을 크게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2~3성급 관광호텔은 대부분 평일 기준 10만원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