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세의 월세화’는 금융위기로 저금리가 유지되고, 전세난이 심각했던 2000년대 말부터 20년 가까이 진행돼 온 현상이다. 서민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에 전세난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것이 대출한도 완화와 저리의 정책대출 등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하는 방안이었다.
당시에는 전셋값 중 모자란 만큼만 대출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전셋값과 집값 오름세에 따라 어느새 전셋값의 대부분을 한도까지 대출받는 것이 당연해졌다. 대출 규모가 커지며 전세대출이 세입자를 경유해 집주인에게 대출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어졌는데도 금융기관이 집주인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전세대출이 불완전한 제도 기반 위에서 전세제도의 생명을 연장하며 거품을 키우다가 결국 터진 것이 전세사기 사태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전세 매물 감소 등에 대해 “정상화 과정”이라는 표현이 나온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하지만 전세는 수십 년간 주거 사다리의 한 축으로 기능해온 제도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 계층 이동의 원동력이었던 특유의 교육열만 봐도 그렇다. 그동안은 전세가 있기에 교육환경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해 자녀를 가르칠 수 있었다. 전세가 없었다면 수백만 원의 월세를 내며 교육비까지 감당할 수 있는 ‘현금부자’만 ‘맹모삼천지교’가 가능했을 것이다. 전세가 있기에 20, 30대들이 출퇴근이 편한 도심에 전셋집을 얻어 저축하고 자산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10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내거나, 두세 시간 통근을 감당하거나, 월세가 저렴한 외곽 지역에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돼 가고 있다.
전세제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정부가 할 일은 전세제도의 공백으로 인한 충격을 예측하고 완화할 대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중산층도 거주할 만한 양질의 공공임대를 공급하겠다는 얘기는 벌써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서울 도심에 눈에 띄는 물량이 나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 정부 들어 두 차례 공급대책이 발표됐지만 지난해 9·7 공급대책의 핵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혁안은 감감무소식이고, LH 사장은 벌써 8개월 가까이 공석이다. 주택 공급 컨트롤타워로 올해 1월 출범한 국토부 주택공급추진본부의 본부장도 현재 공석 상태다.
전세사기 사태는 정부가 부실하게 제도를 설계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때 일반 서민들이 어떤 피해를 입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정부와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된다. 정부의 역할은 최근의 전세난을 “구조적 변화의 영향”이라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충격을 실질적으로 완화할 정책을 짜는 데 있어야 한다.이새샘 산업2부 차장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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