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건희]900원 통행료는 쫓으면서 ‘죽음의 질주’는 방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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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요금소 앞에서 하이패스 단말기가 고장 난 적이 있다. 이럴 때 직접 요금을 내겠다고 무리하게 차로를 바꾸면 위험하다. 그대로 천천히 요금소를 통과했고, 예상대로 몇 주 지나지 않아 집으로 900원의 통행료 고지서가 날아왔다. 채 1000원도 안 되는 돈이지만 무임 통과를 막기 위해 번호판을 식별하고 차적을 조회해 우편물을 발송하는 우리의 행정 시스템은 핀셋처럼 정교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사망 사고의 주범인 화물차의 졸음운전과 과속에 대해서도 우리 행정이 이토록 치밀한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7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7배로 늘었다. 이 중 화물차 사고 사망자가 39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대다수는 졸음운전이나 과속 때문이었다.

정부는 화물차 사고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2011년 1월 ‘2시간 운행 후 15분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를 감시하기 위해 디지털 운행기록장치(DTG)의 장착도 강제했다. 화물차 속도와 운행 시간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으로, 누적 1조 원 넘게 투입됐다고 한다. 2024년 10월부터는 DTG 기록 제출도 의무화했다. 이를 어기면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최대 15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게 돼 있다.

그런데 촘촘해 보이는 안전망이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해 DTG 의무 장착 차량의 기록 제출률은 30%에 못 미쳤고, 의무 제출 대상인 25t 이상 화물차도 제출률은 65.3%였다.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안 지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화물차 등록 대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천 중구 등 시군구 5곳의 담당자는 하나같이 “휴식 의무 위반이나 DTG 미제출로 과태료를 매겨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자료를 관리하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위반 화물차 명단을 솎아 지자체에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자체는 이미 DTG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운행기록분석시스템(eTAS)’의 접속 권한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담당자 중에는 “eTAS의 인터페이스가 구식이라 확인이 불편하다”고 한 사례도 있었다. 범행 현장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손에 쥐고도 ‘화면이 보기 불편하다’며 판독을 거부하는 수사관의 직무 유기와 다를 바 없다. 첨단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활용하지 않으니, 이만한 무책임과 낭비를 찾기도 힘들다.

그사이 의무 휴식과 DTG 제출은 화물차 기사와 업체 사이에서 ‘지키면 바보’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취재팀이 고속도로에서 만난 화물차 기사 중에는 “23시간 넘게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900원짜리 통행료 고지서를 보내는 치밀함의 절반이라도 화물차에 쏟았다면 지금처럼 과속과 졸음운전을 일삼을 수 있었을까. 동아일보는 교통기획 ‘로드 리부트: 사망 제로를 향해’를 통해 기본적인 수칙을 알고도 안 지키는 실태를 조명하고 있다. 기본을 지켜야 하는 건 운전자만이 아니다. 당국이 기본적인 단속조차 손을 놓는다면, ‘사망 제로’의 목표는 더 멀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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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사회부 차장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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