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련 칼럼]파병이라는 금기를 깨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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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은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이 과연 한미동맹과 국익을 위해 군사행동에 나설 역량과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베트남전쟁 이후 50년 넘게 전투병 파병을 꺼려 왔고, 과거 미 대통령들은 우리의 주저함을 대체로 양해했다. 하지만 동맹조차 거래 대상으로 삼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셈법이 많이 달라졌다. 여기에 화물선 ‘나무호’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누군가 날린 비행체 2기의 타격을 받은 사건으로 ‘파병의 정치학’이 재삼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는 개전 초부터 이재명 정부에게 해군 함정 파병을 요청했다. 하지만 다른 서유럽 동맹과 일본이 그랬듯 우리는 개입하기 어려웠다. 워낙 위험한 곳인 데다, 미국은 왜 이란을 공격했는지 똑 부러진 설명을 내놓지 못해 전쟁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었다. 설령 비행체 공격이 이란 소행으로 드러나더라도 인명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파병 여론이 우세할 것 같지는 않다.

군사행동이란 1차적으론 군 수뇌부와 외교안보 책임자들의 영역이지만, 종국엔 정치인, 특히 대통령의 결단에 달린 일이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안보 책임자들은 뒤로 빠졌고, 정치인들은 여론조사 숫자를 살펴가며 민심을 추수(追隨)하는 경향이 보수 정부건 진보 정부건 나타났다.

적잖은 안보 당국자들은 사석에선 파병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누구도 자기 말과 글로 속마음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런 환경 속에선 미국의 파병 요청이 간혹 있더라도 “우리 장병을 사지로 내몰란 말인가”란 한마디는 초기 여론의 싹을 자르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몸집이 커졌다. 국방예산으로 연 65조 원을 투입해 세계 5위 강군을 키워 놓고도 위험 지역에는 보낼 수 없다는 말은 ‘뜨거운 얼음’처럼 형용모순이 돼 버렸다. 하지만 파병의 명분이 있는 전쟁일지라도 나설 여지는 별로 없다.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를 돕는 일마저도 공개적인 것이라면 주저했다. 러시아와 이란이 ‘적대 행위로 간주한다’고 엄포를 놓으면 ‘납치나 테러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흔들리는 게 우리다.

3월 중순 이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은 거절할 때 하더라도 정치인 누군가는 나서서 파병 필요성을 제안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쓴 바 있다. 특히 소신파 정치인이라면 ‘무서운 고양이(민심)의 목에 방울 달기’를 할 때가 됐다는 제언이었다. 정말 누군가 토론의 물꼬를 터주길 바랐다.

그즈음 안철수 등 국민의힘 의원 3인이 제각각 파병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논쟁은 살지 못했다. 예상대로 반대(55%) 기류가 찬성(30%)을 압도했다(3월 20일·한국갤럽). ‘왜 우리가 지구 반대편 분쟁에 끼어드나’라는 비판과 ‘당신들과 가족부터 먼저 참전하라’는 말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보수가 거론하고 진보가 반박하는 구조가 되풀이됐다. 이제부터라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은 국제 분쟁 때 자국 병사들의 죽음을 감수해 가며 파병하는 이유는 되새겨 봐야 한다. 그 나라라고 군인의 생명 보호를 내세운 반대가 없는 게 아니다. ‘나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사고체계가 그들 나라엔 확립돼 있는데, 미국의 그늘 아래 안보를 보장받아 온 한국으로선 낯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전시전작권을 미국에서 2, 3년 뒤 돌려받으려 한다.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데 한 발 더 다가서겠다는 것으로, 중견국다운 안보전략이 태동하는 시기가 지금일 수 있다.

결국 정치인 두셋은 총대를 메고 ‘파병을 상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당장 파병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먼 훗날을 대비해 우리 국민들의 흉중 어딘가에 이런 토론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6·25전쟁 때 도움받은 한국은 우방과 동맹을 도울 책무가 있고, 그래야 훗날 다시 도움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글로벌 분쟁 해결이나 항행의 자유 수호처럼 안보 공공재를 놓고 보면 한국은 최대 수혜국 가운데 하나라는 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런 공공재 형성에 기여해야 발언권을 키우고 국익을 지킬 수 있다는 것도 납득시키길 바란다. 당대의 박수만 받고 싶은 정치인은 할 수 없는 일로, 여론의 뭇매를 각오해야 한다.

이런 굵직한 방향 제시는 소수 리더들의 몫이다. 당 대표나 대통령 후보에 도전하는 이들이라면 파병, 국제질서 만들기, 한국의 역할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으면 좋겠다. 지금은 지방선거 국면이지만, 여야가 선거 후 당 주도권 경쟁이 시작되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정치는 큰데 정치인들이 너무 작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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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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