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이 부탄 국민에 '선거'를 선물한 날…스님은 왜 총을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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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히말라야산맥 자락에 있는 미지의 나라 부탄에 처음으로 민주주의 선거가 도입되었다. 선거사무국장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를 교육하기 위해 시골 마을을 찾는다. 마을 어귀에 빨간당, 파란당으로 사람을 갈라두고 서로 때릴 듯 싸우라고 가르친다. 이를 보던 한 노인은 국장에게 묻는다.

"왜 무례하게 굴라고 가르치죠?"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이 인상적인 장면은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의 영화 <총을 든 스님>에 나온다. 영화는 오랜 시간 왕정을 이어온 부탄의 한 마을 '우라'를 배경으로, 민주주의가 처음 도입되던 당시의 혼란과 충돌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부탄은 1907년부터 한 세기 넘게 왕이 국가를 지배하는 전제군주제 국가였다. 그러나 2006년, 당시 국왕이었던 지그메 싱게 왕축은 스스로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헌법과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혁명도 시민 저항도 없었다. 전제군주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선물’한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였다.

그러나 정작 민주주의를 받아든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왕이 왜 우리를 떠나려 하나?"라는 실망감 속에서 서구발 정치 체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퍼졌다. 왕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공동체 가치를 지켜오던 부탄인들에게, 민주주의는 혼란이자 불신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영화 <총을 든 스님>은 바로 그 낯섦과 불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한 수도원의 주지 스님은 라디오를 통해 부탄에 처음으로 민주주의 선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 타시에게 느닷없이 소총을 구해오라고 지시한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일을 바로잡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타시는 영문도 모른 채 총을 찾아 마을을 헤매지만, 평화롭고 고즈넉한 이곳에서 총을 구하는 일은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어색하다.

영화는 타시의 여정과 함께 두 개의 다른 이야기도 함께 보여준다. 하나는 남북전쟁 시대 소총을 구하려 부탄을 찾은 미국인 총기 수집가 론과 그의 가이드 벤지의 이야기다. 이들은 경찰의 감시를 피해, 오래된 총을 간직한 마을 주민 얍을 찾아간다. 얍은 이미 론과 거래를 약속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타시에게는 스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을 선뜻 내어준다. 그는 약속을 어기는 것에 망설이지 않았다. 스님이라는 상징적 존재가 가진 공동체의 감각이, 어떤 논리보다 먼저였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관계의 질서가 그들 사이에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왕이 부탄 국민에 '선거'를 선물한 날…스님은 왜 총을 들었나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또 하나의 축은 마을의 한 가족이다. 유펠의 아버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선거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만, 그 여파는 의외의 곳에서 드러난다. 딸 유펠이 학교에서 아버지의 정치 성향을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웃과 장모와도 관계가 틀어진다. 정치참여가 일상의 균열로 번지는 풍경 속에서, 국장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곧 지나갈 거고, 다 행복해질 거예요." 그때 유펠의 어머니는 대답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행복했어요."

이 세 이야기의 끝은 하나로 모인다. 보름달이 뜬 날, 마을 사람들은 '총을 묻는 의식'에 모인다. 론과 벤지, 그들을 쫓는 경찰, 유펠 가족까지 모두가 이 자리에 함께한다. 의식의 목적은 명확하다. 새롭게 도입된 민주주의를 맞이하며, 폭력과 증오의 상징인 총을 땅에 묻고 그 위에 탑을 세우는 것. 주지 스님이 총을 원했던 이유도 바로 이 의식을 위한 것이었다.

론과 벤리가 그토록 원하던 총은 탑의 토대 아래 떨어지고, 경찰은 자신의 총을, 아이들 또한 장난감 총을 따라 던진다. 강요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의식 속에서 마침내 모든 총이 땅에 묻힌다. 증오와 갈등이 아닌 평화와 공동체를 위한 탑의 기틀이 그렇게 완성된다.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이 영화는 전통적인 가치를 지켜오던 부탄 공동체를 배경으로, 현대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민주주의는 보편적이고 무결한 제도일까? 우리는 이 시스템 속에서 상대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이 공론의 일부라 믿으며 살아간다. 더 나아가 '투쟁'이라는 이름 아래 그런 적대적 태도마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영화 속 선거 교육 장면에서 "왜 무례하라고 가르치죠?"라고 묻는 한 노인의 질문은,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정치적 정상성'에 균열을 낸다. 편을 들지 않거나,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 되레 의심받는 시대에, 그 물음은 익숙함 속에 잊고 지냈던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든다. 정치를 통해 우리가 지키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그것은 아마 공동체적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적대적 갈등은, 어쩌면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구로부터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이식받으며 그것의 절차적 위대함에 감탄하고 의심 없이 신뢰해 왔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그 부작용인 편 가르기와 혐오의 정서까지도 민주주의의 본질인 양 체화해 버린 건 아닐까.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익숙함과 무뎌짐은 함께 온다. 민주주의 제도의 외형이 나날이 정교해지는 사이, 우리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적대적 감정에도 점점 익숙해졌다. 그러는 동안 공동체적 감각은 서서히 무뎌졌고, 존중과 신뢰, 배려 같은 감정은 이제 정치의 언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동안 서로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남겼고, 어쩌면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누군가에겐 오랜 염원의 성취였고, 누군가에겐 깊은 상실로 남았다. 하지만 그 환희와 좌절이 엇갈리는 풍경은, 또 다른 갈등의 예고편처럼 불안하게 떠오른다. 그 누구도 대립과 반목에 지친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무례함을 경쟁력으로, 증오를 정당화하는 정치가 지속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영화 속 의식처럼, 이제 우리에게도 '총을 묻는 시간'이 오길 기대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잃어버린 공동체적 감각을 되찾는 일, 그것만이 우리 안에 쌓인 적대감과 피로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 그 감각은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품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뿐이다.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영화 <총을 든 스님> 스틸컷 / 사진. ⓒIMDb

가성문 영화감독

[영화 <총을 든 스님 (the monk and the gun)>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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