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관세 놓고 격돌한 ‘사업가’ 트럼프와 ‘법률가’ 파월[글로벌 포커스]

20 hours ago 2

‘최고 권력자’ 美대통령 vs ‘경제 대통령’ 연준 의장
트럼프, 파월 직접 임명하고도… 금리 인하에 미온적 태도 보이자 1, 2기 모두 “해임하겠다” 압박
파월 임기는 법적으로 보장… “정치적 통화 정책, 경제 악화”
전직 연준 의장들 공동 기고… 역대 대통령과 연준, 종종 불화
‘연준 흔들기’, 美 신뢰에 악영향… “기준금리 내려도 효과 제한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P 뉴시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파월 중 누가 미국에 더 적(敵)인지 모르겠다.”

“파월은 ‘(금리 인하가) 너무 늦은 남자’(Mr. too late)이자 ‘중대한 실패자’(major loser)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자신의 집권 1기 때 직접 발탁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게 지금껏 퍼부은 독설의 일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자신의 금리 인하 요구에 미온적인 파월 의장에게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배신자’ ‘멍청이’ ‘무능하다’란 표현을 썼다.

집권 2기에 들어서는 더 노골적으로 ‘해임’을 강조하며 위협한다. 배임 같은 중대 과실이 없다면 법적으로 4년 임기(연임 가능)가 보장된 연준 의장을 해임할 권한이 자신에게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내쫓겠다고 외친다. 지난달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이로 인한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우려한 월가 투자자들이 대거 매도에 나서 당시 뉴욕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경기 부양’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대통령과 ‘물가 안정’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바라보는 연준은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많은 미국 대통령들이 연준 의장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다만 연준 의장, 그것도 자신이 임명한 연준 의장에게 이토록 노골적으로 사퇴를 강요한 백악관 주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일하다.

두 사람이 왜 사사건건 부딪치는지,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과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연준 의장의 갈등 역사는 어떤지 알아본다.

● “고금리는 惡” vs “원리원칙 중요”

‘부동산 사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과 ‘법률 전문가’인 파월 의장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두 사람이 ‘저금리’라는 사안을 두고 왜 대립하는지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25세 때인 1971년 부동산 개발회사 트럼프그룹의 대표가 됐다. 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건물과 땅을 대거 사들이고 개조한 후 비싸게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금리’는 사업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정치인이 된 뒤에도 고금리는 자신의 주 지지층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방해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금리를 ‘악(惡)’으로 여긴다는 건 언론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기준금리가 5.50%였던 2023년 9월 NBC 방송 인터뷰에서 “금리가 너무 높아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파월 의장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법조인이 된 후 뉴욕 월가 투자은행 딜런리드,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등에서 인수합병(M&A) 및 자금조달 업무의 관리 감독을 주로 담당했다. 깐깐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태도가 몸에 밸 수밖에 없다.

2011년 1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공화당원인 파월을 연준 이사로 지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당적이 다른 인물을 연준 이사로 발탁한 건 1988년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민주당원이었던 존 라웨어 전 이사를 기용한 지 23년 만이어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민주당 일각에서는 파월의 당적, 그가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법조인 출신이란 이유로 그의 기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오바마 전 대통령은 파월이 정치적 이념을 앞세우지 않는 데다 실용주의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라는 점을 높이 샀다. 다음 해 5월 이사 임기를 시작한 파월은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기 위해 1년에 8차례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늘 다수 의견에 따르는 투표를 하며 연준에 무난히 녹아들었다.

2017년 11월 첫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임이 예상되던 재닛 옐런(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 당시 연준 의장을 교체하고 당적이 같은 파월을 연준의 새 수장으로 낙점했다. 그는 파월이 똑똑하고 헌신적이며 연준에 필요한 모든 지도력을 갖췄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파월 의장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금리를 낮추지 않자 노골적으로 비난했고, 해임도 거론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2018년 한 해에만 네 차례 금리를 올렸다. 2019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했다. 그는 파월 의장을 해임할 방법을 찾아내라고 참모진을 들볶았다. 해고가 어렵다는 것을 알자 ‘의장’에서 ‘이사’로 강등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그러자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옐런 등 4명의 전직 연준 의장은 2019년 8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공동 기고문을 통해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통화정책은 경제 성과를 악화시킨다. 중앙은행이 단기적인 정치 이익에서 독립하는 게 국익에 부합한다”며 맹목적인 금리 인하 요구를 멈추고 연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비판했다.

● 집권 2기에 더 거센 충돌

파월 의장은 바이든 전 대통령 시기인 2022년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2024년 대선 과정에서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는 2020년 대선 과정의 앙금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대선을 앞두고 연준에 적극적인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해 연준은 경기 부양 차원에서 금리를 내리긴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대선에서 패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금리를 더 빨리, 더 많이 내렸어야 했다’며 거듭 불만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연준 사람들보다 내 직감이 더 낫다. 대통령이 최소한 거기(연준)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연준 인사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한 달 후엔 “파월이 카멀라 해리스(당시 부통령 겸 민주당 대선 후보)를 돕기 위해 금리를 내렸다”는 근거 없는 주장도 폈다. 대선 승리 후에는 2026년 5월 파월 의장의 임기 만료 전에 미리 후임 의장을 지명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재집권 뒤에도 노골적으로 파월 의장의 해임을 거론했다. 그는 지난달 17일 트루스소셜에 “파월의 해임을 더 미룰 수 없다”고 썼다. 같은 날 취재진에게도 “내가 그를 내쫓고 싶다면 아주 빠르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전날 파월 의장이 한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미 경제를 물가와 실업률 안정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의 결정은 전적으로 경제지표에 달려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달 22일 “파월을 해고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뉴욕 증시의 급락, 나아가 금융 시장 전반의 혼란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일주일 만인 29일 취임 100일 집회에서 파월을 “정말 일을 잘 못하는 연준 인사”라고 지칭했다. 또 “난 그보다 금리에 대해 훨씬 많이 안다”고 비판을 재개했다. 파월 의장의 3연임 가능성도 사라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지난달 14일 “백악관이 올가을경 파월의 후임자를 찾는 면접을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트루먼-카터도 연준과 불화

트럼프 대통령 외에도 연준과 불화를 겪은 대통령은 많다. 1950년대 초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참전 여파 등으로 정부 지출이 치솟자 연준에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윌리엄 마틴 당시 의장은 이를 거부했다.

마틴 전 의장은 취임 첫해인 1951년 연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협약도 재무부와 맺었다. 1913년 연준 출범 후 38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연준 최초의 흑인 이사 앤드루 브리머는 이런 마틴 전 의장을 ‘연준의 구원자(Savior of the Fed)’라고 극찬했다.

마틴 전 의장은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을 때 ‘펀치볼(punch bowl·파티 때 음료를 담는 커다란 그릇)’을 치우는 것이다”란 명언도 남겼다. 경기 호황으로 모두가 흥청일 때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거품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마틴 전 의장은 19년간 최장수 연준 수장을 지내며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까지 5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이런 마틴 전 의장과 자주 비교되는 인물은 아서 번스 전 의장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베트남전 비용을 조달하려고 막대한 달러를 찍어냈다. 이로 인해 달러 가치가 급락한 ‘닉슨 쇼크’가 발생했지만 연준은 통화팽창 정책을 폈다. 번스 전 의장이 재선을 꿈꾸는 닉슨 전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한 탓이다.

닉슨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1973년 1차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일어난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여기에 ‘워터게이트 도청 사태’가 터지며 닉슨 전 대통령은 결국 하야했다. 번스 전 의장 또한 종종 ‘최악의 연준 의장’으로 꼽히는 치욕을 당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볼커 전 의장도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볼커 전 의장이 취임한 1979년에도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 후폭풍에 시달렸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당시 볼커 전 의장은 물가 안정을 택했다. 그는 취임 두 달 만인 1979년 10월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이란 용(龍)을 잡겠다”고 외쳤다. 당시 11%였던 기준금리를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최고치인 20.5%까지 끌어올렸다. 초고금리에 반발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 연준 본부로 와 오물까지 투척했지만 꿈쩍하지 않고 금리 인상을 고수했다.

그는 결국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취임 초 14%까지 올라갔던 소비자물가가 3, 4%대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또한 재선을 앞둔 1984년 여름 볼커 전 의장에게 “대선 전까지 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식으로 압박했다. 볼커 전 의장은 두 번째 의장 임기를 두 달 남겨둔 1987년 6월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말리지 않고 그린스펀 전 의장을 후임자로 발탁했다.

● ‘트럼프 관세’도 갈등 불씨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으로 연준과 행정부의 불화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관세가 고물가와 저성장을 동시에 부추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 이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처럼 ‘금리 인하 결정’을 내리는 건 쉽지 않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끊임없는 ‘연준 흔들기’가 결국 그 자신에게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최근 미국 주식, 채권, 달러 가치의 하락에서 보듯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 정책, 연준에 대한 유례없는 위협은 미 경제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자산의 추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파월 의장의 해임 여부에 관계없이 대통령이 계속 연준 의장의 권한을 흔든다면 연준이 독립적으로 적절한 통화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금융시장 전반의 의구심이 커진다”고 진단했다. 송민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의 미국 장기 국채가격 하락(국채 수익률 상승)으로 설사 기준금리를 낮춘다고 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는 통상 국채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통화정책의 신뢰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라 설사 기준금리를 내려도 기대만큼 국채 수익률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이 약해지면 장기적으로는 관세전쟁보다 훨씬 큰 피해가 미 경제에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집권 공화당의 존 케네디 상원의원(루이지애나) 역시 최근 NBC 방송에 출연해 “어느 대통령도 연준 의장을 해임할 권한은 없다”며 파월 의장을 두둔했다.

연준과 파월 의장이 무조건 ‘선’, 트럼프 대통령이 무조건 ‘악’은 아니다. 연준 역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제기된 정책 실기(失期)를 했다. 연준은 팬데믹 초기인 2021년 7월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2022년 6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9.1%에 달할 정도로 치솟았다. 또 “금리 인상이 늦어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경기 침체 시기마다 부양을 위해 택한 대규모 양적 완화가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지적도 많다. 다만 로스 레빈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경제매체 배런스에 “연준이 완벽하지 않고 실수도 종종 저질렀지만 이런 결함은 수정하면 되는 것이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개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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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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