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환]해협은 열렸지만, 다변화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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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렸다. 국제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넉 달여의 공급 불안도 걷히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나 정작 긴장해야 할 때는 지금부터다. 위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원유 도입처 다변화의 동력도 번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낯선 장면이 아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도입이 끊기자 중동 의존도는 60% 선에서 2년 만에 72%로 되돌아갔다. 2차 오일쇼크 이후인 1982년 다변화 지원제도를 도입한 이래, 한때 전량에 가깝던 중동 의존도를 70% 수준까지 낮춘 것은 분명한 성과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기업을 탓할 일은 아니다. 원유 전량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운임이 가장 싼 중동산을 고르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다변화의 안보 편익은 국민경제 전체에 퍼지지만, 비용인 추가 운임은 기업 원가와 소비자 기름값으로 돌아간다. 개별 기업의 손익계산에 나라 전체의 편익이 잡힐 리 없으니, 시장에 맡긴 다변화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 여기에 정부의 역할이 있다.

역설적으로 이번 위기가 답을 보여줬다. 봉쇄로 중동 물량이 막히자 도입처는 어쩔 수 없이 미주·아프리카 등지로 옮겨 갔다. 주목할 대목은 전환이 혼란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4∼6월 한시적으로 중동산 대비 운임 차액을 전액 보전하자 기업들은 부담 없이 비중동산 원유를 들여왔고, 44년 된 제도는 사실상 처음으로 제 몫을 해냈다. 뒤집어 말하면 초과 운임의 일부만 보전해 온 그간의 제도로는 유인이 되지 못했다는 뼈아픈 진단이기도 하다.

답은 분명하다. 위기에 풀었던 지원을 상시 제도로 정착시키고, 보전을 현실화하며,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재원은 멀리 있지 않다. 원유 수입 때마다 L당 16원씩 걷는 석유수입부과금은 애초 ‘석유 수급과 가격 안정’에 쓰라고 만든 돈이다. 연간 1조 원 넘게 걷히지만 석유 공급망으로 되돌아가는 몫은 크지 않았다. 이제라도 일부를 제 용도로 돌려놓자는 것이지 새 부담을 지우자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초중질유 등 다양한 유종을 소화할 수 있도록 정유설비 개선을 지원하면 다변화의 물리적 수용 능력도 함께 커진다. 마침 정부도 흩어진 재원을 모아 ‘산업자원안보기금’ 신설을 추진한다고 한다. 위기의 한시 보전에서 설비 개선을 담은 기금 구상까지, 정부의 방향은 일관되고 옳다. 이제 그 기금을 토대로 다변화 지원을 상시 제도로 완성할 차례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시대에 석유안보라니, 낡은 의제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석유 수요는 생각보다 천천히 줄고 공급 충격 한 번은 물가와 산업을 흔들어 애써 쌓은 에너지 전환의 성과마저 되돌린다. 석유안보는 전환의 걸림돌이 아니라 질서 있는 전환의 전제조건이다. 외양간은 소가 무사할 때 고쳐야 한다. 해협이 열린 만큼 봉쇄 이전으로의 회귀 관성은 이미 작동을 시작했다. 이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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