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용산 대통령실 인근 이태원동 부지를 직접 매입한 사실 등이 드러난 후 야당을 중심으로 외국인 토지 소유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17일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에 사전 허가제를 적용하는 내용의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외국인이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에서 토지를 사려면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 국민은 대출 규제와 허가제도에 따라 부동산 거래가 제한되는 반면, 외국인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거래 자유'를 누리고 있다"며 "자국민 역차별을 바로잡고 국민의 주거 안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밝혔다.
현행 제도는 군사기지, 문화재 보호구역, 생태·경관보전 지역 등 일부 제한 구역을 제외하면, 외국인도 단순 신고만으로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다. 내국인이 받는 다양한 규제에 비해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상호주의 원칙'도 명시됐다. 한국 국민의 부동산 취득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외국의 국민에게는,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부동산 취득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 상대국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취득과 양도를 허용해 상호주의 적용을 강화했다.
현행법상 상호주의 조항은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지만, 실제로는 제도화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김 의원은 이를 법률로 직접 명시해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달 같은 당 고동진 의원(서울 강남 병)도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입에 '상호주의'를 의무 적용하고,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는 '외국인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한국 국민의 부동산 매입은 매우 제한적이다. 중국 내에서는 외국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고, 주택 구매도 1년 이상 거주 요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반면 중국인은 한국에서 별다른 제약 없이 토지와 아파트를 취득할 수 있어 형평성 논란이 지속돼 왔다.
고 의원은 "현행법에 '상호주의' 규정이 있긴 하지만 임의 규정에 그치고 있으며, 정부도 관련 하위 법령을 마련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전혀 시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유용원 의원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통제보호구역 및 제한보호구역 중 국방 목적상 중요한 지역을 외국인 토지취득 제한구역으로 지정하고 계약 체결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대통령실에서 약 2km 거리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부지를 직접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며 안보지역의 외국인 토지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배경이다. 해당 부지는 미국 대사관 이전 예정지와도 불과 1km 거리다.
고 의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부동산을 취득한 외국인은 약 1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했다. 이 중 중국인이 64.9%에 해당하는 1만1346명으로 가장 많았다. 매입 지역 역시 경기(7842명), 인천(2273명), 서울(2089명) 순으로 수도권에 집중됐다.
실제로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취득은 1998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이후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제한 없이 이뤄지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4월 외국인이 신청한 집합건물 소유권 이전(매매) 등기는 4169건이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2.5%(108건) 적은 수치지만, 올해 1월 833건이던 외국인 매매는 2월 1011건, 3월 187건, 4월 1238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매수 부동산 중 2791건(66.9%)은 중국인이 샀다. 미국(519건), 베트남(136건), 캐나다(118건), 러시아(96건)가 뒤를 이었다.
서울의 고가 아파트를 대출 한 푼 없이 산 중국인 사례가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매수 등기를 한 아파트·빌라·상가 수치만 따져본다면 강남권에선 미국인 매수가 가장 많다. 그럼에도 중국인의 부동산 매입이 논란이 되는 것은 중국인 보유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외국인 보유 주택은 2022년 8만3052가구에서 지난해 10만216가구로 2년 새 21% 증가했다. 체류 외국인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중국인의 경우 외국인 주택 매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53.7%에서 지난해 56.2%로 점차 커지고 있다.
외국인도 국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는다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 규제가 그대로 적용되지만, 자국 금융회사에서 대출받는 경우 규제에서 벗어난다. 지난 3월에는 33세 중국인이 서울 성북구 단독주택을 국내 금융기관 대출 없이 119억7000만원에 사들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11일 서울시의회 정례회 시정 질문에서 "부동산 가격 동향이 이상 급등으로 가고, 거기에 일정 부분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이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되면 분명히 어떤 조치는 강구돼야 할 것"이라며 "국토부와 긴밀하게 협의해 그런 제도를 시행할 필요성이 있는지부터 검토하는 초입 단계"라고 밝혔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