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서늘 '이영애 헤다'vs카리스마 '이혜영 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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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다 가블러' 두 편 나란히 개막…연극계 '빅매치' 돌입
이영애, LG아트센터 공연으로 32년 만에 연극 재도전
이혜영, 13년 만에 헤다 역 다시 맡아 국립극단과 호흡

  • 등록 2025-05-19 오전 6:00:00

    수정 2025-05-19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올 상반기 연극계 최대 빅매치의 서막이 열렸다. 배우 이영애(54)와 이혜영(62)이 각각 주연을 맡은 LG아트센터 ‘헤다 가블러’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가 동시기 나란히 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높은 이름값과 명성을 자랑하는 두 관록의 여성 배우가 같은 원작을 뿌리에 둔 작품으로 연기 맞대결을 벌이는, 두고두고 회자될 흥미로운 맞대결 구도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배우 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LG아트센터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LG아트센터)

이영애 연극 복귀작…실험성 강조한 LG아트센터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는 노르웨이 출신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90년 발표한 고전 희곡이다. 고지식한 학자인 남편과 충동적으로 결혼한 뒤 지루한 신혼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살아가는 여성 헤다가 과거의 연인이 재기에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후 질투와 혼란에 빠져 파국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으로 한 발 먼저 공연을 시작한 건 이영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LG아트센터표 ‘헤다 가블러’다. LG아트센터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한 연극으로 지난 7일 1300석 규모 대극장인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에서 막을 올렸다.

배우 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LG아트센터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LG아트센터)
배우 이영애가 주연을 맡은 LG아트센터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LG아트센터)

다채로우면서도 실험적인 무대 연출과 구성으로 차별화를 꾀하며 헤다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출은 연극 ‘키리에’, ‘나는 살인자입니다’ 등으로 호평받은 전인철이 담당했다.

기하학적 조형미를 강조한 무대는 날지 못한 채 집안에서 표류하는 형형색색 풍선 더미, 커다란 디오니소스 그림 액자 등 눈길을 붙잡는 다양한 소품들로 채워 헤다의 욕망과 꿈이 한결 더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꾸몄다.

라이브 캠으로 촬영한 화면을 무대 벽면에 송출하는 이채로운 방식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헤다의 주요한 심리 변화 장면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면서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이 가운데 모든 등장인물이 공연 내내 퇴장 없이 무대에 머무르는 구성은 헤다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장치 역할을 한다.

이영애는 헤다를 도도함과 시니컬한 매력이 도드라지는, 동시에 서늘하면서도 파괴적인 성향을 품고 있는 인물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봄날은 간다’, 드라마 ‘대장금’ 등으로 폭넓은 캐릭터 소화력을 자랑해온 배우답게 32년이란 긴 연극 공백을 무색하게 하며 연출의 미를 극대화하는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매체 연기로 화려한 이력을 쌓아온 배우인 만큼, 라이브캠으로 바라보며 소화하는 연기까지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배우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13년 만에 돌아온 ‘이혜영 헤다’…정공법 택한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이혜영이 이끄는 국립극단의 ‘헤다 가블러’는 500석 규모 중극장인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16일부터 공연 중이다. 당초 8일 개막 예정이었으나 출연진 중 한 명이 건강문제로 교체되는 이슈가 발생한 탓에 한 차례 개막이 연기됐다.

국립극단이 관객들의 재연 요청이 지속적으로 쇄도한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려 정규 레퍼토리로 확장하기 위해 기획한 ‘픽(Pick) 시리즈’로 선보이는 공연이다. 2012년 같은 장소에서 ‘헤다 가블러’로 호흡을 맞춘 박정희 연출과 이혜영이 13년 만에 다시 의기투합했다. 박정희 연출은 현재 국립극단의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기도 하다.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는 고전적인 분위기였던 초연 때와 다르게 현대적 감성을 불어넣어 우아하고 몽환적으로 꾸민 무대에서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전개해 나가는 데 집중한다. 헤다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내 인물 간의 관계성과 감정의 밀도를 촘촘하게 채워나간다는 점도 돋보인다. 날카로운 현악 질감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린다는 점 또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배우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배우 이혜영이 주연을 맡은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공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이혜영은 빼어난 노련미와 탁월한 완급조절력이 느껴지는 연기로 헤다를 카리스마 넘치고 자기주관이 뚜렷한 인물로 표현해낸다. 13년 전 ‘헤다 가블러’로 ‘제5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 연기상과 ‘제49회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 수상 영예를 안은 이혜영은 ‘헤다 경력자’답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기로 극에 묵직함을 더한다.

두 공연 모두 관객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순항하고 있다. 6월 8일까지 공연하는 LG아트센터 ‘헤다 가블러’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연극 부문 최신 월간 티켓 판매액 순위에서 1위에 올라 있다. 6월 1일 폐막 예정인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는 이미 전 회차 티켓이 매진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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