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e커머스 롯데온은 작년 9월 여행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다. 티몬, 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 직후였다. 항공, 숙소, 투어 등 여행 상품에 강점이 있는 티몬, 위메프가 시장에서 퇴출되면 관련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등 국내 주요 여행사 상품을 대대적으로 팔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올 들어 롯데온의 여행 관련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매달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 이달 들어선 100% 넘는 매출 증가율을 기록 중이다. 이태래 롯데온 여행서비스팀장은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여행 상품을 선보이는 등 달라진 여행 트렌드에 맞춤형으로 대응해 성과를 냈다”고 했다.
‘티메프 사태’ 이후 첫 여름휴가 시즌을 맞은 국내 온라인 여행 판매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롯데온 등 대기업 계열 e커머스가 주요 판매 채널로 부상했고, 여행사 자체몰을 통한 판매가 늘었다. 글로벌 여행사(OTA)의 존재감도 커졌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SK그룹 11번가의 여행 관련 상품 매출은 지난달부터 이달 15일까지 45일간 전년 동기 대비 41% 급증했다. 특히 지난 2일 시작한 ‘숙박 세일 페스타’ 효과가 컸다. 서울과 경기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의 숙소를 예약하면 2만~3만원짜리 할인쿠폰을 나눠주는 행사다.
신세계그룹의 G마켓에선 테마파크 입장권과 해외 패키지 상품 판매가 늘었다. 이달 들어 15일까지 테마파크 입장권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패키지 상품 거래액도 93% 급증했다.
여행업계에선 롯데온 등이 ‘대기업 효과’를 누렸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티몬, 위메프가 판매대금을 대규모로 미정산한 뒤 여행사들이 신뢰성 높은 대기업 계열 e커머스 위주로 입점하고 있다”며 “여행 상품 구색이 늘자 자연스럽게 소비자가 몰리고 있다”고 했다.
여행사 자체 판매 채널도 활성화하고 있다. 상당수 여행사가 e커머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몰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결과다. 국내 1위 여행사 하나투어 온라인몰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올 1분기 약 112만 명으로 전년 대비 7% 늘었다. 하나투어의 올 3월 온라인 회원은 857만여 명으로 1년 만에 13% 증가했다. 라이브커머스 ‘하나Live’가 하나투어 온라인몰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규모 상품권 경품 행사, 요일별 특가상품 행사 등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분할 결제’도 티메프 사태 이후 나타난 현상 중 하나다. 티메프 사태 때 가장 피해가 컸던 소비자는 수백만원짜리 패키지여행 상품 구매자다. 당시 피해를 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본 이들도 여러 여행 사이트에서 여행 상품을 분할해서 구매하고 있다. 항공권은 A여행사, 호텔은 B여행사를 이용하는 식이다. 특히 트립닷컴, 호텔스닷컴 등 글로벌 여행사 상당수가 후불 분할결제(BNPL: Buy Now, Pay Later)를 도입했다. 당장 결제하지 않아도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