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니던 1990년대 말 형이 이종 종합격투기 UFC 1회 대회 비디오테이프를 구해왔어요. 정말 짜릿했죠. 그땐 룰이 없이 싸웠거든요. 어떻게 원초적으로 저렇게 치열하게 싸울 수 있을까. 충격적이었죠. 그러면서도 묘하게 빠져 들었어요. 형하고 비디오를 보면서 함께 기술 훈련하기도 했죠. 그때 권투를 시작했어요. 권투라도 해야 나중에 격투기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박정진 경남대 서울캠퍼스 부총장(왼쪽)이 경남 마산시 ‘짐 에이스’에서 UFC 선수 출신 임현규의 지도를 받으며 격투기 훈련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생활화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권투 등 격투기를 즐겼고, 지금은 달리기와 격투기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박정진 부총장 제공.
박정진 경남대 서울캠퍼스 부총장(47·정치학)은 어릴 때부터 몸 쓰는 것을 좋아했다. 태권도 단증을 4단까지 땄다. 형인 박정민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영향으로 대학 시절부터 격투기와 권투도 즐겼다. 미국 유학할 때는 주짓수와 레슬링을 접했다. 요즘도 달리기와 격투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고민거리가 있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열심히 땀을 흘린다.
“권투했더니 체력이 좋아졌어요. 줄넘기와 섀도복싱만으로도 체력을 키울 수 있었죠. 거의 매일 운동했고, 하루 최대 6시간 한 적도 있어요. 학군사관후보생(ROTC) 시절 체력이 약한 편이었는데 권투로 다져져 현역 복무를 쉽게 마칠 수 있었죠. 군대에서도 시간만 나면 운동을 했어요.”
박정진 부총장이 서울 종로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옆에서 글러브를 끼고 격투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사실 박 부총장은 권투 대회 출전까지 준비했었다. 5라운드 뛸 체력을 만들고 있었는데 당시 다니던 체육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포기했다. 미국 유학 시절이던 2005년엔 다른 격투기를 만났다. 뉴저지에서 살았는데 브라질 친구들하고 어울리면서 주짓수와 레슬링을 배웠다. 박 부총장은 대신 권투를 알려줬다. 그는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땀 흘리면서 친해졌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는 UFC 하부리그인 보독파이트 고위 인사와도 인연을 맺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격투기 얘기를 많이 했고, 그분이 티켓을 구해줘 경기도 많이 봤다”고 했다. 선수들과 훈련도 함께 했다.
“언젠가는 뉴욕 경찰들과 친구가 됐죠. 미국 경찰들은 다 운동을 잘해요. 주짓수와 복싱은 기본이죠. 그 친구들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제가 뉴욕경찰서(NYPD) 안에 들어가서도 운동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었죠.”
박 부총장은 UFC 관계자들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고, 한국에 돌아온 뒤 ‘에이스’ 임현규(40)와 인연을 맺었다. 군대 마치고 28세에 UFC에 ‘지각 데뷔’한 임현규는 키 187cm의 장신에 윙스팬(양팔을 벌렸을 때 길이)이 200cm나 됐던 파이터다. UFC 13승 1무 7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UFC 임현규의 현역 시절 모습. 수퍼액션 제공
박 부총장은 임현규 선수 현역 시절 후원하기도 했다. 임현규는 지금은 경남 마산시 경남대 앞에서 ‘짐 에이스’를 운영하고 있다. 박 부총장도 가끔 들러 임현규의 지도를 받으며 운동한다. 박 부총장은 “요즘 그곳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많아 자주 가지는 않는다. 기회 있을 때 가끔 가서 흠뻑 땀을 흘리면 정말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고 했다.30대 초반 연구에 집중하면서는 달리기를 병행하며 건강을 다졌다. “짧은 시간에 최고의 효과를 내기엔 달리기가 최고”라고 했다. 요즘은 격투기보다 달리기에 더 빠져 있다. 그는 “격투기는 개인 훈련을 할 수도 있지만 파트너가 있어야 더 재밌다. 그런데 지인들과 함께 운동하던 체육관들이 사라져 만날 기회가 줄었다. 그래서 달린다”고 했다.
어느 순간 박 부총장에게 운동은 다이어트 측면으로도 다가왔다. 2008년 국내로 돌아와 박사 학위를 마무리하는 등 바쁘게 살다 보니 운동할 기회를 잡지 못했고, 한순간에 체중이 15kg이나 불었다. 늘 운동과 함께했던 그에겐 충격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한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박정진 부총장이 서울 종로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옆에서 격투기 발차기 자세를 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박 부총장은 지난해부터는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55)의 리어풋(뒤꿈치) 착지법에 매료돼 달리고 있다. 그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뒤꿈치부터 대고 천천히 바른 자세로 달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3km만 달려도 힘들었는데 리어풋으로 달리면서 9~10km도 쉽게 달리고 있다. 그는 “이젠 권투 등 격투기할 때도 뒤꿈치를 대고 스텝을 밟는다. 힘이 덜 들면서도 펀치나 니킥(무릎차기)을 날릴 때 파워를 더 낼 수 있다”고 했다.
“전 요즘엔 절대 빨리 달리지는 않아요. 일단 체중이 많이 늘어서 혹 무릎이나 발목 관절에 무리가 가면 다른 운동을 할 수 없으니까요. 또 다음날 다시 달려야 하는데 너무 무리해 달리면 힘들더라고요. 운동의 생활화를 위해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게 제 몸에는 딱 맞더라고요. 그리고 황영조 감독님의 주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만일 그 주법으로 제대로 달리게 되면 속도도 빨라질 겁니다.”
박 부총장은 운동 유전자(DNA)를 타고났다. 외할아버지가 경희대 체육 학장을 지낸 고 김명복 박사로 그의 이름을 딴 ‘김명복배 권투 대회’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체조선수였다. 아버지 박재규 경남대 총장(81)도 검도와 유도를 즐겼다. 그의 형은 러시아 유학할 때 삼보 러시아 챔피언까지 했다. 러시아 출신 유명 격투기 선수였던 표도르 예멜리야넨코(49)와도 친분이 있다. 형 덕분에 표도르가 2000년대 중반 한국에도 방문했었다.
박정진 경남대 서울캠퍼스 부총장이 서울 종로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에서 머리 밴드에 연결된 펀치볼에 주먹을 날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박 부총장은 강의와 연구를 위해 서울과 마산을 오가면서도 운동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머리에 줄을 매고 공일 치는 펀치볼을 사무실에 비치하고 있다. 몸이 찌뿌드드할 땐 어김없이 펀치볼을 친다. 그는 “공은 작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짧은 시간에 상당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박 부총장은 요즘엔 주 3일 이상 매일 2시간 넘게 운동하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 30분 스트레칭 체조에 이은 1시간 30분 달리기. 격투기는 틈틈이 기회 있을 때 한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정해놓고 운동합니다. 어려서부터 힘들 때 몸을 쓰면 모든 것을 잊고 집중할 수 있었죠. 제 의지가 꺾일 것 같을 때도 격렬하게 운동합니다. 그럼 투지가 생겨요. 그리고 체력이 강할 때 그 무엇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죠.”
박정진 부총장(오른쪽)이 경남 마산시 ‘짐 에이스’에서 UFC 선수 출신 임현규의 지도를 받으며 격투기 훈련을 하고 있다. 박정진 부총장 제공.
“전 체력론자입니다. 체력이 있어야 공부와 연구 뭐든 잘할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아파도 바로 낫죠. 사람들이 어디 가다 구덩이에 빠지더라도 결국 자기가 스스로 이겨내고 나와야 되는 것이잖아요. 결국 자신이 강해야 합니다. 정신력도 체력이 없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전 격투기를 통해서 그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누구를 패서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측면에서요. 극한의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체력입니다. 전 격투기와 달리기로 그 체력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평생 이것을 체득하면서 살았어요. 운동은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