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입사 이후 3일간 매일 지각하던 직원이 4일째되던 날 출근 경로에서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매일 지각하던 직원이 이날 유독 이른 시간 운전을 하다 사망했다면 출근길로 보기 어렵고, 특히 차량에 입사 전부터 하던 부업 관련 적재물이 실린 정황을 들어 "부업을 하러 가던 길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급여 지급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22일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근로자 B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유족급여 및 장례비 불지급 처분을 취소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B씨는 2023년 1월 25일 전북 임실군의 한 자동차 정비업에 입사해 정비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입사 첫날 3시간이나 지각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과 그 다음날도 1시간 지각한 9시경 출근하는 등 3일 연속 지각했다. 입사 나흘째인 같은 달 28일 오전 6시 49분경 B씨는 자신의 화물차를 몰고 회사가 있는 임실 방향으로 향하던 중 도로를 이탈해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사망했다. 모친 A씨는 2023년 2월 근로복지공단에 “아들이 출근 도중 사고를 당했다”며 유족급여 및 장례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같은 해 6월 19일 “사고 지점이 출근 경로에 있긴 하나, 사고 당시 시각과 그 이전 출근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출근 목적이 아닌 다른 사적 사유로 이동하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공단은 B씨의 사고 발생 시각이 오전 6시 50분으로 평소 출근 시각과 차이가 크고, 특히 B씨는 입사 직후 3일간 지각한 전력이 있던 점을 들어 "출근 중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입사 전에도 B씨가 고철·파지 수집 부업을 계속해왔고, 사고 당시 차량에 상당량의 파지가 실려 있었던 점을 들어 출근이 아닌 부업 활동 중 사고가 발생했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먼저 “B의 자택에서 사업장까지 거리는 약 50km, 소요시간은 55분 정도이며 사고가 없었다면 오전 7시 40분경 도착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소정 출근시간(오전 8시)에 근접한 시각이므로 출근 목적의 이동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또 “사고 지점이 통상 출근 경로상에 있었고 B가 다소 이른 시간에 출발했더라도 생활용품 구매 등 일상적 행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출퇴근 경로의 일탈이나 중단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각 전력과 관련해서도 “B의 실제 출근일수는 3일에 불과해 일반적 출근 습관으로 단정할 수 없고, 수습기간 중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지정된 시간에 맞춰 출근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부업 의혹에 대해서는 “B가 과거 고물을 수집·매각한 사실은 인정되나, 사고 당시 이를 위해 이동 중이었다고 단정할 뚜렷한 정황은 없다”며 “사업주의 추측성 진술만으로 출근 목적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망인이 사업장에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근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공단의 처분을 취소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