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단독주택과 빌라, 좁은 골목이 뒤엉킨 서울 강북구 번동 429의 114 일대는 노후·불량 건축물 비율(노후도)이 80%를 넘는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7층 이하만 짓게 돼 있어 사업성도 떨어졌다. 게다가 재개발 기준(구역면적 1만㎡)에 밑돈 데다 필지는 작게 쪼개져 있었다.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한 대안은 ‘모아타운’이었다. 여러 필지를 하나의 단지로 묶어 재개발하는 제도다. 2022년 1월 모아타운 1호 사업지로 선정되고 5개로 쪼개진 구역이 하나로 합쳐졌다. 땅이 넓어지니 도로 정비, 공동 주차장, 녹지 조성 등 기반시설을 설계할 수 있었다. 사업지 선정 6년여 만인 2028년 ‘북서울하늘채시그니프아파트’(1242가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노후 주거지를 개조하는 정비사업이 재건축·재개발뿐 아니라 모아타운 공공재개발 등으로 다양화해지고 있다. 사업성이 낮은 곳에 용적률 완화 같은 인센티브를 줘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고 있다.
보편화된 재개발·재건축
주택정비사업은 크게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구분한다. 둘 다 헌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는 게 공통점이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사업 성격이 다르다. 재건축은 공동주택(아파트)을 대상으로 하고, 재개발은 단독주택, 빌라 등 노후 저층 주거지역에서 이뤄진다. 대체로 아파트는 재건축, 나머지는 재개발로 보면 된다.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인 ‘조합원’ 자격이 다르다. 재건축은 기존 아파트의 토지와 건축물을 모두 소유해야 조합원 자격을 얻는다. 이에 비해 재개발은 토지와 건축물 중 하나만 소유해도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소유한 땅이 도로인 경우도 90㎡ 이상(서울시 기준)이면 조합원으로 인정받는다. 심지어 국·공유지 위에 올린 무허가건축물도 주거 목적이었음을 입증하면 조합원 자격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재개발은 취득 방식이 다양하다 보니 ‘지분 쪼개기’가 골칫덩이다. 단독주택을 철거한 자리 혹은 나대지에 다세대주택을 지어 조합원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서울 한남동, 성수동 같은 재개발지에선 “길바닥이 강남 아파트보다 비싸다”는 얘기까지 나온 배경이다. 문제가 커지자 지방자치단체별로 ‘권리산정기준일’을 도입해 지분 쪼개기를 금지하고 있다. 조합원 입주권을 받지 못하고 현금 청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갈등이 심했던 서울 아현1구역, 전농9구역 등 재개발지는 ‘분양용 최소 규모 주택’(최저 주거기준 14㎡)을 일정 규모 공급해 소규모 지분 보유자도 주택 입주가 가능하도록 했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은 조합원 자격을 양도하는 ‘전매’ 허용 시점도 차이가 있다. 재건축은 조합설립인가 이후부터, 재개발은 관리처분인가 후부터 소유권 이전 등기 때까지 원칙적으로 전매가 금지된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말이 나오면 최소 15년 걸린다고 보면 된다”며 “주민 반대로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최소한 정비구역이 지정됐는지 확인하고, 조합설립인가 문턱을 넘은 사업구역에서 입주권을 매입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초기 정비사업 활성화가 관건
정비사업을 재건축과 재개발로 나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2003년 제정됐다. 노후화되는 도심을 빠르게 재정비하지 못하고 주택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인건비와 자재비 상승 등으로 공사비가 오르자 사업 기간을 단축해야 할 필요도 생겼다.
서울시는 심의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신속통합기획(2021년 9월), 모아타운(2022년 1월) 제도를 도입했다. 주민이 먼저 계획안을 마련하는 일반적인 정비사업과 달리 계획 단계부터 지자체가 민간과 공동으로 계획안을 수립하는 방식이다. 정비사업이 민간 주도에서 민관 공동 주도로 바뀐 계기가 됐다.
신속통합기획은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지자체가 공공성을 반영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돕는다. 통상 5년 걸리던 정비계획 수립 절차를 2년으로 줄여준다. 사업 주체인 조합에 층수 규제 완화,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주는 대신 임대주택, 공용 녹지 등을 공공기여로 받는다. 사업 대상지 282곳 중 173곳이 신속통합기획 방식을 택했다. 다른 지방도 ‘부산형 정비계획 입안요청제’ 등 비슷한 사례를 두고 있다.
모아타운은 말 그대로 여러 소규모 사업지를 모아 개발하는 제도다. 면적 1만㎡ 미만도 ‘가로주택정비사업’이라는 제도를 통해 소규모 재개발이 가능하다. 모아타운은 지하주차장 통합 건설과 도로 정비 등의 측면에서 유리하다.
공공 재개발도 활발
아예 공공이 개발사업 전체를 주도하는 곳도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같은 공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공공재개발이 대표적이다. 사업성이 부족해 민간 건설회사가 외면하거나 주민 갈등이 극심한 지역이 대상이다. 서울에서 진행 중인 공공재개발 사업지는 31개 구역(LH 18곳, SH 13곳)이다. 공공재개발은 임대주택 등 공공기여가 필수다. 하지만 인허가 절차가 빠르고 용적률 상향과 층수 규제 완화 혜택이 주어진다. 공공이 일정 부분 매입해 미분양 위험도 낮다. SH 관계자는 “주민이 추진한 사업들이 장기 표류하다가 공공재개발을 의뢰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1구역은 2004년 정비예정구역 지정 이후 약 20년간 사업이 지연돼 왔다. 성곽 마을과 인접한 자연경관지구여서 용적률 등 규제가 까다로웠다. 이곳이 선택한 카드는 LH가 전면에 나서는 공공재개발이었다. 임대주택을 넣더라도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공공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3월 LH와 주민대표회의 간 사업시행약정을 맺은 데 이어 이달 초 GS건설과 공공재개발 사업 추진을 위한 사업시행 협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10년 넘게 개발이 지연된 지하철 5호선 양평역 인근 양평13구역도 조합이 SH와 협력해 2021년 공공재개발로 선회했다. 정비사업 속도가 가장 빨라 연내 관리처분인가를 앞두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리스크가 적고 안정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대형 건설사도 공공재개발 수주에 나서는 분위기”라며 “공공의 주택 공급 역할을 강조한 정부 정책 기조를 반영해 공공재개발 현장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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