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리더, 공정·투명성 실종, 말뿐인 비전…실패한 기업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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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
①스스로 고립 자초한 사령탑
혁신 아닌 개인 명예회복에 집착
②팬들 신뢰 걷어찬 축협
감독 선임·경질 과정서 숱한 논란
비전 일관성 없이 단기 성과 몰두
③日, 20년 넘는 한우물 성과
감독 바꿔도 축구철학은 그대로
韓, 명확한 선발·육성 시스템 필요

  • 등록 2026-07-03 오전 12:07:00

    수정 2026-07-03 오전 12:07:00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정리=이석무 기자] 기업 경영의 실패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해 변화에 둔감하고, 고객의 경고음을 가볍게 넘기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축구도 다르지 않다. 경기 결과는 90분 안에 결정되지만, 그 결과를 만든 원인은 훨씬 전부터 켜켜이 쌓인다. 홍명보호(號)의 북중미 월드컵 실패가 그랬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의 배경에는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들이 응축돼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거스 히딩크(왼쪽) 감독의 리더십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했던 홍명보(가운데) 감독. 안타깝게도 그는 ‘제2의 히딩크’가 되지 못했다. 사진=AFPBBNews

히딩크 같은 ‘변혁적 리더’가 성과 내

이번 대표팀의 몰락은 경영학 관점에서 보면 한국 축구의 구조적 실패에 가깝다. 월드컵을 앞두고 이뤄진 두 차례 대표팀 감독 선임부터 문제였다. 한국은 2023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앉혔다. 주로 미국에 머물며 방송 해설위원 활동을 겸했던 그는 뚜렷한 전술과 축구 철학마저 없던 ‘방관자적 리더’였다.

한국 축구에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주는 ‘변혁적 리더’가 필요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거스 히딩크 감독과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대표팀 내부에선 무한 경쟁 체제를 만들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팀의 기둥으로 여겨지던 선수도 예외 없이 다그쳤으며, 때로는 경기에서 제외했다. 반대로 만년 후보로 여겨진 선수들에게는 기회를 주며, 주전과 후보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경쟁만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위축된 선수에게는 따뜻한 말을 전했고, 성장한 선수는 공개 칭찬했다. 강력한 동기 부여와 세밀한 배려가 함께 했기에 한국 축구는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주장이었던 홍명보 감독은 히딩크 리더십을 가까이서 경험한 인물이었기에 변혁적 리더십을 기대했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땄을 때에는 이른바 ‘형님 리더십’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장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한 차례 실패를 겪은 홍 감독은 명예를 회복에 집착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굳은 표정으로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건전한 거버넌스는 투명성·공정성으로 작동

홍 감독을 고립시킨 또 다른 원인은 대한축구협회(KFA)의 ‘거버넌스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KFA는 승부조작 가담 축구인 조기 사면 논란과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이미 신뢰를 잃었다. 월드컵 준비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신임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혼선을 보였다.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는 권한과 절차를 둘러싼 논란까지 일었다. 투명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거버넌스는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한국 축구의 고객인 팬들은 납득하지 못했고, 홍 감독을 ‘정당한 리더’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팬들은 대표팀에 등을 돌렸고, 온 국민의 성원을 받아야 할 대표팀은 월드컵 출정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홍명보호는 멕시코 땅을 밟기도 전에 이미 신뢰를 잃은 조직이었다. 홍 감독 입장에서는 분위기를 바꿀 유일한 방법은 월드컵에서의 호성적이었기에, 더 큰 압박감을 느꼈을 테다. 그가 더욱 고립된 이유다.

거버넌스가 지속 가능 하려면 비전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KFA는 장기 비전을 안정적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경우는 지금껏 3회(2002 한일월드컵·2010 남아공월드컵·2022 카타르월드컵) 뿐이었다. 모두 대표팀 감독이 3년 이상 지휘했을 때였다. 이 같은 결과를 알고도 KFA는 감독에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감독을 선임할 때 일관된 원칙과 철학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표팀의 스타일은 감독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다.

KFA는 2024년에서야 ‘MIK’(Made In Korea)라는 한국 축구 기술 철학을 발표했다. ‘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 축구’를 지향하고, 2033년까지 FIFA 랭킹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가 보여준 축구는 방향성이 달랐다. 빠르고 주도적인 축구가 아니라 수비 위주의 역습 축구에 가까웠다. 32강 탈락보다 더 뼈아픈 대목은 한국 축구가 스스로 발표한 지향점과 반대 방향으로 퇴보했다는 점이다.

일본 축구팬들이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최강’ 브라질과 대등하게 맞선 일본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AP PHOTO

명확한 비전으로 일관된 원칙 유지해야

이 부분에서 일본과의 차이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21년 전인 2005년 일본 축구철학을 담은 ‘재팬스 웨이’(Japan‘s Way)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재팬스 웨이’는 △대표팀 강화 △유소년 육성 △지도자 양성 △축구 보급 등 4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포지션별로 추구하는 선수 역량, 대표팀이 공수에 걸쳐 추구하는 플레이가 세부적으로 담겼다.

일본은 ‘재팬스 웨이’를 바탕으로 패스를 통해 공간을 만들고 공을 소유하는 기술 축구를 꾸준히 발전시켰다. 감독이 바뀌어도 대표팀의 큰 물줄기는 한 번도 변화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선 32강전에서 ‘최강’ 브라질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면서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KFA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일본을 배워야 한다. MIK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감독을 선임하고, 그 철학에 맞는 선수를 선발·육성해야 한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단기 성적만이 아니다. 시스템에 의해 한 방향으로 꾸준히 전진하는 한국 축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좋은 기업이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성장과 인재 육성을 지속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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