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주 한림대 마이스기획경영전공 교수, 이데일리 김정남 김형욱 기자] 미국 CES, 독일 하노버메세, 대만 컴퓨텍스처럼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세계적인 전시회를 우리도 가질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정부와 민간이 전시산업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흔히 전시산업의 가치는 수출 계약 규모로 환산한다. CES와 하노버메세 등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역거래가 이뤄지지만, 이는 전시산업 가치의 극히 일부만을 드러낼 뿐이다. 전시회는 단순한 상품 교역의 장을 넘어 기술과 시장, 정책과 투자가 하나로 응집되는 ‘비즈니스 연결 플랫폼’이다. 반도체 부품사가 로봇 제조사를 만나고, 지역 스타트업이 글로벌 바이어와 계약을 체결하는 기회의 장이다. 독일 하노버메세가 제조업의 미래 의제를 설정하는 나침반으로 기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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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글로벌 산업 전시회 현황 표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비즈니스 연결 플랫폼’ 산업 전시회
한국 전시산업은 지금 도약의 분기점에 서 있다. 연간 800여건의 전시회가 전국에서 개최되고, 코엑스, 킨텍스, 벡스코 등 세계 수준의 전시 인프라가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제조 경쟁력과 K컬처라는 두 개의 강력한 콘텐츠 자산을 가진 나라에서 세계적인 전시 플랫폼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가진 탄탄한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첨단산업 패러다임을 선도할 수 있는 전시회를 육성해야 한다.
또 다른 전시산업의 가치는 지역에 남기는 유산이다. CES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매년 1월 한 주 동안 약 2조원의 지역경제 효과를 거둔다. 독일 하노버메세는 단 5일간 행사로 하노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약 6000억원의 지역 소비를 창출한다.
이는 단기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인 전시회를 품은 도시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레이더에 오르고, 바이어들의 반복 방문으로 이어지면서 도시의 브랜드 자체가 격상된다. 독일 뮌헨이 BMW와 뮌헨 모터쇼로, 스위스 다보스가 세계경제포럼(WEF)으로 도시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한 게 대표적이다.
한국의 전시 인프라 역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18개의 전시컨벤션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잠실·포항·강릉·전주 등에서 신규 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시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전국 각지에 비즈니스 연결 거점이 생긴다는 의미다. 또 그 거점을 중심으로 지역 산업과 문화가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시산업 육성은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 주도 과제인 ‘5극3특’ 성장 엔진에 불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첨단 전시회들, 통합 브랜드로 묶어야
현재 한국 전시산업은 전례 없는 행운이 찾아오고 있다.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해외 소비자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 제품에 프리미엄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프랑스가 ‘아르 드 비브르’(Art de Vivre)로 수십년에 걸쳐 쌓아온 소프트파워를 우리는 불과 10여 년 만에 얻어낸 것이다.
전시산업은 이 행운을 가장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K컬처 종합 박람회가 K뷰티·K푸드 주간과 도시의 축제를 결합하고, 코엑스, 킨텍스, 광화문, 한강을 하나의 거대한 경험 공간으로 연결할 때, 세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라이프 스타일 수출 강국이 될 수 있다. 실제 미국 텍사스에서 매년 열리는 ‘SXSW’(South by Southwest)는 오스틴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아 문화·기술·비즈니스를 하나로 녹여내고 있다.
한국 전시산업이 나아갈 방향은 명확하다. ‘더 깊은 연결’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전시회를 육성하는 것이다. 먼저 흩어져 있는 반도체, 기계, 로봇, 전자, AI 등 첨단산업 전시회들을 하나의 통합 브랜드로 묶어야 한다. 산업 전(全)주기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할 때, 세계는 한국을 아시아 제조혁신의 진정한 허브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또 수도권에 집중된 전시 지형도를 전국으로 넓혀야 한다. 전국 전시장들이 각자의 특색 있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한국은 다극 구조의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전문 인력 양성 역시 중요하다. 전시산업은 글로벌 바이어를 섭외하고, 산업 트렌드를 읽어 전시 콘텐츠로 번역하고, 수십개 이해관계자를 조율해야 하는 전문 영역이다. 지속 가능한 전문교육 시스템과 현장 연계형 인재 양성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 거대한 플랫폼은 정부 혼자 만들 수 없다. 지자체, 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함께 호흡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결’ 철학을 바탕으로 융합을 설계하고 인재를 키워낼 민관 협력의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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