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프랑스 근대음악의 거장 모리스 라벨(1875~1937)이 탄생한 지 150주년이 된다. 동시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스위스 시계공 같다’고 평한 라벨의 음악은 극한의 정밀한 리듬감과 뜬구름같은 몽환적 세계 사이를 오간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면서 가장 ‘라벨 같지 않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 그의 관현악곡 ‘볼레로’(1928)다.
안느 퐁텐 감독의 ‘볼레로: 불멸의 선율’은 두 세계대전 사이인 파리의 예술적 격변기를 배경으로 이 작품의 탄생 과정과 라벨의 삶을 담아낸 음악 전기영화다.
영화는 세 주요 등장인물의 3중주를 연상시키는 미묘한 심리극으로 전개된다. 작곡가 라벨(라파엘 페르소나즈), 그에게 발레음악으로 볼레로를 의뢰한 무용가 이다 루빈슈타인(잔느 발리바), 당대 파리 예술계의 대모이자 뮤즈였던 미시아 세르(도리아 틸리에)다. 로마 대상 다섯 번의 탈락,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 어머니의 죽음 등 라벨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과 가장 어두웠던 시간들이 교차하며 ‘볼레로’가 탄생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2009년 영화 ‘코코 샤넬’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퐁텐 감독은 무용수 출신의 경력을 살려 라벨을 둘러싼 예술계의 분위기를 그려냈다.
영화는 시작 부분부터 다양한 편성과 스타일로 연주되는 ‘볼레로’를 보여주면서 이 작품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 변주되는 ‘밈’임을 강조한다. 영화 속에서 라벨은 이렇게 말한다. “그 음악이 내 다른 작품을 다 잡아먹잖아.” 그 말은 진실이다. 라벨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이국적이고 독특한 색채를 지닌 이 작품은 이 정밀한 작곡가에 대한, 얼마간 고정된 시선을 제공해 왔다. 다행히 영화에서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연주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과 관현악곡 ‘라 발스’등 다른 작품들도 들을 수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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