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독자가 뽑은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에 선정된 조예은이 탐나지 않을 문학 편집자가 있을까. <칵테일, 러브, 좀비>로 초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적산가옥의 유령>으로 정통 호러 장편의 저력을 보여준 그는 올해도 꾸준히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스스로 매일의 진보를 증명하고 있다.
가끔 <고기와 석류>, <치즈 이야기>처럼 미각을 자극하는 괴이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소설 속 은유와 익숙한 맛이 기괴하게 매치되어 읽는 이의 말초적인 감각마저 저릿해지곤 한다. 왠지 그 느낌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서 조예은 소설의 인상을 더 선명하게 각인하는 것도 같다. 아름답고도 오싹한, 달고 시큼하고 쿰쿰하고 비릿한, 그런 감각들로 새겨진 기억.
망했다. 실수로 박은해를 토마토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못난이 토마토로. 너무 못나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박은해를 아무도 주워 먹지 않을 거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7p.)마음속에서 누군가를 극도로 미워하게 되면 그를 토마토로 변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도마윤. 겉으로 봐서는 내성적이고 평범한 중학생으로 보이지만 엄청난 초능력을 가진 마윤은 자신의 힘을 즐기기보단 두려워한다. 일상에 치이다 보면 남에게든 나에게든 미움이 커지지 않기가 쉽지 않지만 아무도 토마토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상황. 그런데 자신과는 다르게 자신만만하고 빛나 보이는 유미도가 자꾸만 신경 쓰이고 질투가 난다.
“난 네가 생각한 것처럼 완벽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니야. 오히려 너랑 엄청 비슷한걸.” (84p.)
나에게는 토마토를 먹지 않는 친구가 있다. 잇몸 같고, 심장 같다고.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왠지 그 친구가 생각났다. 도마윤이 사람들을 복숭아나 바나나로 변신시켰다면 조금 달랐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붉고 터질 듯한 속을 가득 담고 있는 얇고 투명한 껍질의 열매라니. 문득 토마토로 변한 나를 상상하다가 소름이 돋았다. 갈라지거나 상처 날 수도, 혹은 뭉개질 수도 있는 이런 대상으로의 상징물을 찾다니, 조예은은 천재인가.
이 소설은 청소년기에 친구를 바라보며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 사소한 것으로도 크게 상처받거나 간혹은 활짝 열려버리기도 하는 예민한 마음을 몇 가지의 사건으로 유쾌하게 보여주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이 책이 포함된 시리즈의 이름이 “소설의 첫 만남”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학급문고나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빼 들고 소설 읽기의 즐거움에 다이빙하게 될 학생들이 왠지 부러워지기도 한다. 마음이 여린 어린 독자들도, 환상소설을 즐기는 성인 독자도, 자신의 마음을 마윤과 미도에게 조금씩 포개보며 이 소설의 상큼한 매력을 즐겨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