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신경림 선생님이 90세가 넘어 병상에서도 한결같은 ‘시(詩) 정신’을 지키며 좋은 시를 썼다는 사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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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신경림(1936~2024) 시인의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도종환(왼쪽) 시인이 엮은이로 시집에 참여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신경림 시인의 막내 아들 신병규 씨. (사진=창비) |
도종환 시인은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신경림(1936~2024) 시인의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창비)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고인이 남긴 시를 직접 엮어 시집으로 만든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등으로 잘 알려진 신경림 시인은 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5월 22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1주기를 앞두고 출간되는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는 기존 작품집에 실리지 않았던 시 중 잡지나 신문 등에 소개된 시와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미발표 시 등 총 60편을 담았다. 2014년 ‘사진관집 이층’(창비) 이후 11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도 시인은 “문학사에 훌륭한 시인은 많다. 하지만 60세가 넘어가면 긴장감이 떨어지면서 발표하는 시도 느슨하게 풀어지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신경림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좋은 시를 많이 남겨주셨다”고 말했다.
또한 도 시인은 “선생님이 남긴 시를 검토하면서 ‘한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창한 것을 내세워 과장하지 않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는 점, 작고 하찮으며 낮은 것을 향한 연민이 있다는 점이 그러했다”며 “이름 있는 시인이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 시집에서 선생님의 이런 한결 같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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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신경림(1936~2024) 시인의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출간 기자간담회에 엮은이 도종환(왼쪽) 시인, 신경림 시인의 막내 아들 신병규 씨가 참석했다. (사진=창비) |
도 시인은 이번 시집 첫 번째 시로 실린 ‘고추잠자리’를 신경림 시인의 시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았다.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 /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 어둑어둑 서쪽 하늘로 달도 기울고 / 꽃잎 하나 내 어깨에 고추잠자리처럼 붙어 있다”는 짧은 시다. 도 시인은 “그동안 살아온 길은 흙먼지 날리는 길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복사꽃밭이었기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에서 시인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표제작인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는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며 삶의 유한함을 긍정하는 내용이다. 도 시인은 “유한한 삶을 슬퍼하지 말고 긍정하며 수용하는 자세가 선생님의 시에 담겨 있다”며 “선생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라 생각해 시집 제목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신경림 시인은 198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를 이용해 시를 썼다. 이번 시집은 신경림 시인의 자녀들이 고인의 컴퓨터 속에 남아 있는 시들을 정리해서 기존에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먼저 추려 출판사 창비에 전달한 뒤 도 시인이 시집으로 엮었다.
고인의 막내아들인 신병규 씨는 “아버지가 유고 시집에 대해 특별히 남긴 말은 없었다. 그저 마지막까지 ‘글 쓰고 싶다. 글 써야 한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늘 단출하셨고 형식적인 걸 안 좋아하셨다. 이런 아버지의 심성이 시인으로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담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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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22일 세상을 떠난 시인 신경림. (사진=창비) |
1주기를 맞아 시인을 추모하고 그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행사도 마련된다. 모교인 동국대에선 15일 ‘신경림 추모 문학의 밤’을 진행한다. 생가가 있는 충주 노은면에선 22일 추모제와 학술대회 등 ‘신경림문학제’가 열린다. 창비는 시인의 첫 시집인 ‘농무’도 특별한정판으로 출간한다.
내년에는 신경림 시인의 유고 산문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후 전집 출간도 이뤄질 전망이다. 도 시인은 “신경림 선생님은 쉽게 쓴 시를 통해 시가 우리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선생님이 남긴 시의 울림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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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표지. (사진=창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