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들어 첫 당·정·대 협의회가 어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20조원 규모로 편성하는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전 국민 민생회복소비쿠폰(민생회복지원금)’을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보편 지원하되 취약계층과 인구소멸지역 주민에게는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빚을 갚기 어려운 자영업자의 채무를 정부가 매입해 소각하는 방식으로 부채도 탕감해준다. 지난달 1차 추경(13조8000억원)을 더하면 총 35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35조원 규모의 ‘슈퍼 추경’ 편성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예전부터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해온 만큼 충분히 예상한 일이다. 장기 침체에 빠진 내수 회복이 시급하고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대선 기간 30조원 민생 추경을 공약으로 내건 터라 적극적으로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라 곳간 사정이 만만치 않다. 국가채무는 1차 추경만으로 1280조원까지 늘어났는데 2차 추경을 반영하면 130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 추경 재원의 대부분을 적자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부채비율 상승 속도는 비기축통화 선진국 11개국 중 체코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다. 더구나 세계 최악의 저출생·고령화 국가이기도 한 만큼 재정 건전성 악화는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돈이 풀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이날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필수 생활물가가 주요국에 비해 너무 가파르게 상승해 소비 회복을 가로막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국정기획위원회가 210조원에 달하는 대선 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누적 78조원 규모의 조세지출(세금 감면) 정비를 검토한다고 한다. 지출 구조조정이든 조세지출 정비든 재정을 최대한 효율화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나랏빚을 늘리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재정을 선심 쓰듯 하면 어떤 대책도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재정 중독’이란 말까지 들었던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