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비마다 도전 택한 아흔살 동원 창업주의 한마디…"도전 안하면 확률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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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사진=동원그룹 제공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사진=동원그룹 제공

“나처럼 늙어서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거의 동화 같은 일이잖아요. 젊으니까 도전을 하라는 거지.”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명예회장(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강남 교보타워에서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이라는 저서의 출판기념회를 겸한 강연회에서 “영국 역사학자도 인류 발전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 하더라. 나이가 젊은 지금 내 인생을 도전해보라”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도전’이라는 단어를 스무번 이상 반복했다.

가난한 소작농 집안 11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명예회장은 1958년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의 무급 항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 낡은 어선 2척으로 사업체를 꾸려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일궈냈다. 최근엔 뭍에서 연어 양식을 하는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 새로운 일을 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아흔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다.

마음먹은 건 일단 하고 보는 게 그의 삶이었다. 고3 시절 서울대 출신 선생님이 “나 같으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바다로 가겠다”라고 하자 그 말 한마디에 부산 수산대(현 부경대)에 입학, 뱃사람이 돼 원양어선에 올랐다. 수산업체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엔 일본의 한 기업가가 다가와 “당신 능력으로 왜 월급쟁이를 하나. 사업을 하라”라는 말에 사채시장에서 1000만원을 빌려 회사를 차렸다. 김 명예회장은 “배를 빌려줄테니 모자라는 돈은 고기를 잡아 갚으라 하더라"며" 일본인 사장이 사업을 권유한 데에는 나에게 배를 임대하고 돈을 얻기 위함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을 흘려 듣지 않았다. 사소한 한 마디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회상했다.

그는 세상의 진리라 생각하는 말이 “시도하면 성공 확률은 50%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 확률은 0%”라고 했다. 이날 소개한 책의 부제도 ‘도전과 모험을 앞둔 당신에게’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사진=동원그룹 제공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사진=동원그룹 제공

큰 성공을 거둔 기업가지만 강연에선 스스로의 ‘실패담’을 더 많이 소개했다. 카메라, 섬유 사업 등 동원이 뛰어들었다가 철수한 사업들을 모두 거론했고 조미 오징어 사업 철수, 삐삐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큰 돈을 고스란히 날린 이야기도 더했다. 그는 “‘돈과 시간을 얼마나 많이 들였는데 포기하면 다 날아간다’ 하는 아쉬움에 실패한 일을 쥐고 있으면 새로운 걸 얻을 수 없다”며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과감하게 포기하고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1세대 기업가로서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유로운 경쟁 체제를 유도하라는 게 핵심이다. 김 명예회장은 "기업이 직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복지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인센티브 제도도 권했다. 그는 "주로 배를 타는 선장들에게 도입된 인센티브 제도를 금융업계에 최초로 도입했는데 효과가 있었다"며 "성과가 좋으면 그만큼 많은 보상을 주는 건 의미 있는 선택이다. 고졸 직원도 수십억원대 인센티브를 줄 정도로 성과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했다"고 귀띔했다.

기업을 물려받은 두 아들에 대한 당부도 있었다. 김 명예회장 장남 김남구 회장은 금융 부문인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차남 김남정 회장은 제조업 부문인 동원그룹을 이끌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아들들에게 "지도자는 것은 명령이 아닌 솔선수범으로 동경을 불러 일으켜야지 권위만 부려선 안된다"며 먼저 희생할 것을 주문했다. 김 명예회장은 장남은 동원산업 직원 시절 아들임을 숨기고 원양어선에 태웠고, 차남은 창원공장 생산직원부터 청량리지역 영업사원 등 현장을 경험하게 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강연회엔 150여명이 청중이 몰렸다. 사진=안혜원 기자

강연회엔 150여명이 청중이 몰렸다. 사진=안혜원 기자

재미있는 일화도 공개했다. 2012년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을 맡아 대회 유치에 성공했던 기억이다. 그는 “여수엑스포를 유치하던 당시 전략을 고민하다 보니 미국·중국 등 큰 나라도 한 표, 인구 3만명도 안 되는 작은 섬나라도 한 표더라”며 “남태평양 작은 섬국가를 조용히 돌아다니며 가입 지원을 해주고 표를 얻어 엑스포 유치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2030년 엑스포 유치를 앞두고 부산이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열세인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가 과거 전략을 묻길래 조언을 해줬더니 대대적으로 도서국 유치 설명회를 열더라. 기밀을 유지해야지, 상대국이 우리 전략을 다 알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도 했다.

강연 후 방청석에서 30대 남짓의 한 그룹 직원이 “명예회장이 살아온 시대는 고성장 시대가 아니냐. 지금의 저성장 시대를 살아간다면 어떤 청년으로 살겠느냐”고 묻자, 그는 “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직업이 몇 없었다. 지금은 1만 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기회가 더 적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인류사를 보면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며 환경 탓을 하기 보다는 지금의 상황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편이 더 낫다, 세상 탓보다는”이라고 덧붙였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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