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을 바꾸니 더 잘 보인다…'디이펙트'가 전할 효과 [종합]

연극 '디이펙트'가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를 예고했다.

19일 서울 대학로 놀 서경스퀘어에서 진행된 연극 '디 이펙트' 프레스콜에서 민해롬 연출과 전 출연진은 "우리 작품은 정말 따뜻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믿고 보던 배우들이 총출동하고, 감각적인 영상까지 더해지면서 극의 흥미를 끌어올린다는 평이다.

민 연출은 "국내 초연작을 선보이는 건 항상 설레고 부담이 된다"며 "첫 젠더 밴딩을 선보인다는, 그것도 3개의 페어로 선보인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그만큼 설렘도 있었다. 특히 함께하는 사람들이 다들 능동적으로 임해서 어마어마한 장면들을 완성해냈다. 창작진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디 이펙트'는 항우울제 임상 테스트에 참여한 '코니'와 '트리스탄', 그리고 이 테스트를 감독하는 박사 '로나 제임스'와 '토비 실리'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사랑과 슬픔을 다룬 이야기다. 약물 시험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 혼란스러운 감정들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번 공연은 세계 최초 '벤더 밴딩' 캐스팅으로 이뤄져 기획 단계부터 주목받았다. 젠더 벤딩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 구분 업는 차림, 행동'으로, 배우가 자신과 다른 성별의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배우 성별에 맞춰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는 경우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성별의 구분을 두지 않는 젠더 프리 캐스팅의 한 방식으로 알려졌다.

민 연출은 "소위 감정 인지가 취약한 코니 같은 캐릭터는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여성으로 성별을 부여했는데, 성 역할이 바뀐다고 해도 섬세하고 예민할 수 있다는 프로덕션 측의 아이디어가 저에겐 고무적으로 다가왔다"며 "또한 자유 의지가 강력한 인물도 남성 캐릭터에 부여했는데, 이걸 바꾸는 게 영국 프로덕션에서도 의미있는 작업이라 받아들여주신 거 같다"고 전했다.

'디 이펙트'는 영국의 유명 극작가 루시 프레블의 희곡으로 2012년 런던 영국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신작상' 수상을 비롯, 각종 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자배우상, 최우수 연극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증명했다.

이후 시드니극장(2014), 워싱턴 스튜디오극장(2017), 샌프란시스코 플레이하우스(2018), 런던 영국국립극장 (2023), 뉴욕 더쉐드극장(2024)에서 꾸준히 공연되며 관객과 평단의 끊임없는 호평과 찬사를 받아왔다. 국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험을 이끌어 가는 '로나 제임스(Dr. James)' 박사 역에는 김영민, 이상희, 이윤지가 캐스팅되었다. 우울증은 약물 투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토비 실리(Dr. Toby)' 박사 역에는 양소민, 박훈, 민진웅이 참여한다.

김명민은 이번 연극으로 8년 만에 대학로다. 김명민은 "지난해 예술의 전당에서 무대에 올랐지만 오랜만에 대학로라 설렌다"며 "몇년 동안 연극을 안했고, 이런 걸 떠나 마음의 고향이라고 느끼고, 계속 연극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보러 다니고 해서 친숙하게 접근해 공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젠더 밴딩은 다들 걱정했고, 많이 고민했다"며 "단순히 성전환으로 인한 대사의 바뀜 뿐 아니라 각자 고민했고 그게 잘 녹아내린 거 같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윤지는 3년 만의 연극 무대였다. 이윤지는 "육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달 연습, 몇달 공연하는지가 중요했다"며 "그만큼 저의 마음에도 와닿아야 하고, 가족들의 허락도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 '진짜다' 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다"고 농담 섞인 발언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꽉 차게 배우들과 쫀쫀하게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이상희는 이번이 첫 연극이다. "연극을 그동안 많이 해보고 싶었다"며 "수없이 많이 보았던 모습인데, 어제 공연으로 보니 굉장히 좋았다. 머리가 개운하고 시원해진 느낌을 받았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연을 함께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박훈은 "저 역시 오랜만에 윤지 씨와 다시 호흡을 맞추고, 연극을 한다"며 "연극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팀워크인데, 졸업작품을 할 때보다 더 열심히 서로 연습하고 있다. 그래서 작업이 더 수월할 거 같다"고 전했다.

이성적인 심리학과 학생으로 실험에 참여한 '코니(Connie)' 역에는 박정복, 옥자연, 김주연이 캐스팅되었다. 특유의 자신감과 자유로운 성격의 실험 참가자 '트리스탄(Tristan)' 역에는 오승훈, 류경수, 이설이 함께한다.

류경수는 "이 작품을 하면서 연출님이 원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임했다"며 "빈 무대가 부담됐는데, 어떻게 하면 채울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래서 관객들이 이 연극에 스타일에 맞게 제가 어우러지는 걸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캐스팅에 대해 민 연출은 만족감을 보이며 "각 배우들의 역량이 워낙 뛰어나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출연진을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이제는 트렌드가 영상 매체나 무대 연기를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캐스팅하지 않는다"며 "그런 매체간, 장르간 도전들이 역동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건강한 현상이라고 본다"고 평했다. 이어 "복잡하고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작품이라 무대에서 활동한 경력도 고려하고, 매체에서 깊이있는 연기로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를 찾기 위해 긴 탐색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공연은 빈 무대에 후방의 영상 연출로 꾸며냈다. 민 연출은 "클래식한 설정이 구조적으로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역동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배우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획해보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작품의 따뜻한 메시지에 집중해 줄 것도 당부했다. 이윤지는 "공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한 관객이 '안아드려도 될까요'라고 하더라"며 "그런 감정의 공유를 하게 된 관람평을 듣고 정말 행복했다. 이제 시작인 공연인데, 저희끼리도 서로를 안아주지만 관객들에게도 따뜻함과 위로로 전달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옥자연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뭔지, 그게 가능한 건지 전하는 작품"이라며 "많은 분들이 보시고 이러한 감정을 느끼셨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디 이펙트'는 오는 8월 31일까지 상연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