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지하에 숨겨진 음악의 방, 헤르만 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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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아르떼 클래식 음악 파트에서 <뚜벅이 클덕의 작은 공연장 탐방기>라는 칼럼을 쓰고 있는 권혜린이라고 합니다. 제가 평소에 좋아하고 관심 있게 보던 이곳을 칼럼에 담고 싶어서 대표님께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하려고 합니다.’

이제 겨우 넉 달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 칼럼니스트인 내가 (아르떼를 등에 업고) 공연장 대표님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마침 좋아하는 연주자의 공연이 있기도 했고, 곳곳에 빨간 덩굴장미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초여름의 길목에서 왠지 이곳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지나쳐버리기 쉽다는 점에서 이 작은 공연장은 덩굴장미와 닮았다고나 할까?

감사하게도 인터뷰 요청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받고 5월의 네 번째 토요일 오후, 내가 찾아간 곳은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헤르만 아트홀’이다. 길 찾기 앱을 켜고 헤르만 아트홀을 처음 찾아간다면 ‘응? 여기가 맞아?’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 내려 골목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조용한 주택가가 나오는데 (편한 옷차림의 주민들이 오고 가는) 작은 오피스텔 앞에서 ‘목적지 도착’ 표시가 뜨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게 도착했으니 문을 열고 들어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된다. 나무로 마감한 따뜻한 분위기의 홀과 120개의 객석, 무대 위의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관객들을 맞이하는 헤르만 아트홀이 거기에 있다.

헤르만 아트홀 이민호 대표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여러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2022년 8월에 문을 연 헤르만 아트홀은 ‘독일 톤마이스터(클래식 음향감독)’가 만든 공간으로 이미 유명하지만 ‘뚜벅이 클덕’의 시선에서 궁금한 것들을 풀어보았다.

헤르만 아트홀 이민호 대표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헤르만 아트홀 이민호 대표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 성수동 골목, 오피스텔 지하에 작은 공연장을 만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성수동을 먼저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여러 동네를 물색하다가 이곳을 발견했는데 공간의 넓이나 층고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성수동이 핫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동네였고요. 사실 제가 톤마이스터로서 음반 녹음이나 연주 영상 촬영을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원래 목표였는데, 작은 곳보다는 큰 곳이 사운드가 좋고 울림이 좋기 때문에 좀 넓은 공간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녹음 스튜디오를 생각하다가 아예 공연장도 같이 하면 좋겠다 해서 녹음과 공연에 최적화된 음향 환경을 갖추어 헤르만 아트홀을 열게 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공연도 하고 연주 녹음과 촬영도 하고 있습니다."

헤르만 아트홀 내부 모습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헤르만 아트홀 내부 모습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 헤르만 아트홀을 찾는 관객들과 연주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민호 대표: "관객분들은 무대가 엄청 가깝고 울림이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 연주자분들도 음향에 대한 만족도가 높습니다. 특히 저희 피아노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무대에 비해서 좀 커 보이죠?"

뚜벅이: "네, 저도 여기 처음 왔을 때 ‘와, 엄청 큰 스타인웨이가 있네’라고 생각했어요."

이민호 대표: "저도 처음에는 작은 사이즈인 스타인웨이 모델 B를 놓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저희 형이 강력히 주장한 게 모델 D(풀사이즈)였어요."

헤르만 아트홀 무대 모습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헤르만 아트홀 무대 모습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뚜벅이: "아, 형이라면 이승원 지휘자님이시죠?"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부지휘자로, 지난해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승원 지휘자가 이민호 대표의 친형이다)

이민호 대표: "맞습니다. 형이 ‘음반을 녹음하는데 스타인웨이 모델 B로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해서 모델 D로 결정을 했고, 독일 스타인웨이에서 오래 근무하셨던 이세호 명장님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분께서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를 위해 제작에 참여했던 스타인웨이 D-274를 공수하게 된 건데요. 헤르만 아트홀의 규모에 맞게 최적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직접 세팅을 해주셨어요. 독일에서 소콜로프와 랑랑, 유자왕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했던 피아노가 지금은 이 공간에 맞게 세팅된 것이죠."

헤르만아트홀에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아끼고 즐겨 연주했던 피아노'라고 쓰여 있다.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헤르만아트홀에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아끼고 즐겨 연주했던 피아노'라고 쓰여 있다. / 사진출처. HERMANN ART HALL

▷ 헤르만 아트홀의 ‘추구미’는 무엇인가요?

"성수동은 젊은 분위기 속에서 새롭고 트렌디한 것을 즐길 수 있는 곳이잖아요. 헤르만 아트홀도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요. 클래식이 낯선 분들도 헤르만 아트홀에 오셔서 편하게 클래식 공연을 즐기며 연주자들과도 가까이서 호흡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연주자들과의 네트워크도 아주 넓은 편이라서 뛰어난 연주자들의 공연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반기에도 피아노, 첼로, 오보에, 바순 독주회를 비롯해 플루트 콰르텟, 브라스 퀸텟, 첼로 콰르텟 등 다양한 기획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날 나는 헤르만 아트홀에서 권오현 비올리스트의 공연을 감상했다. 특유의 깊고 따뜻한 음색,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비올라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악기지만 다른 악기에 비해 독주회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비올리스트의 무대라면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마침 헤르만 아트홀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은 시간이었다.

독일의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와 막스 브루흐의 작품으로 꾸려진 권오현 비올리스트의 무대는 비올라의 다양한 색깔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힌데미트의 무반주 비올라 소나타 2번은 다섯 개의 악장이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곡이었고 선이 굵은 권오현 비올리스트의 음색과도 잘 어울렸다. 박진우 피아니스트와의 호흡으로 들려준 힌데미트의 비올라 소나타 바장조는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자유로운 형식이 돋보였고, 브루흐의 이중 협주곡 마단조는 원래 클라리넷과 비올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지만 이날은 박진우 피아니스트, 박정현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트리오 편성으로 연주해서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좌] 2025년 5월 24일, 헤르만아트홀에서 공연한 '권오현 박진우 듀오 리사이틀'  [우] 헤르만 아트홀 공연 현장 / 사진. ©권혜린

[좌] 2025년 5월 24일, 헤르만아트홀에서 공연한 '권오현 박진우 듀오 리사이틀' [우] 헤르만 아트홀 공연 현장 / 사진. ©권혜린

클래식의 본고장 독일에서 오래 공부하고 경력을 쌓은 톤마이스터의 생각이 담긴 작은 공연장,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니 그곳은 더 이상 작은 공연장이 아니었다. 음향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으로 다양한 기획 공연을 선보이는 이곳에서라면 관객도 연주자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아, 공연장의 이름은 독일 문학가 ‘헤르만 헤세’에서 따온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추측은 땡! 틀렸다. 독일 데트몰트(Detmold)에 있는 50m가 넘는 높이의 전승 기념비인 ‘헤르만 기념상(Hermannsdenkmal)’에서 따온 것인데, 이민호 대표가 톤마이스터 공부했던 데트몰트에서의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데트몰트에 있는 헤르만 기념상(Hermannsdenkmal)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데트몰트에 있는 헤르만 기념상(Hermannsdenkmal)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가 새로운 것을 보고 즐기기에 좋은 성수동, 이 작은 공연장에서 독일 클래식 바이브에도 한 번쯤 푹 빠져보는 건 어떨까?

권혜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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