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나요?” “임상 테스트를 해본 적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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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 역의 류경수(사진=레드앤블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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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 역의 이설(사진=레드앤블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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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레드앤블루) |
약물 실험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 인간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연극인 ‘디 이펙트’가 국내에 상륙했다.
영국 극작가 루시 프레블이 쓴 이 작품은 2012년 런던 영국국립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뒤 비평가협회상에서 최우수신작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시드니극장(2014), 워싱턴 스튜디오극장(2017), 샌프란시스코 플레이하우스(2018), 뉴욕 더쉐드극장(2024) 등지에서 관객과 만났다.
국내에서 공연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민새롬은 19일 서울 대학로 놀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초연작 연출은 설레면서도 부담되는 일”이라며 “이번 작품의 경우 12명의 배우가 다양한 페어로 4인극을 올리는 방식이라 공연 준비에 대한 부담이 더 컸는데, 모두가 능동적으로 작업에 임해줘서 감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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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역의 민진웅(사진=레드앤블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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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역의 양소민(사진=레드앤블루) |
민 연출이 언급한 바대로 ‘디 이펙트’ 출연진에는 12명의 배우가 합류했다. 실험을 이끄는 로나 제임스 박사 역에는 김영민·이상희·이윤지를, 약물 투약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토비 실리 박사 역에는 양소민·박훈·민진웅을 캐스팅했다. 실험 참여자인 이성적인 심리학과 학생 코니 홀 역은 박정복·옥자연·김주연이 맡는다.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또 다른 실험 참가자 트리스탄 프레이 역을 소화하는 배우는 오승훈·류경수·이설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출연진에 대거 합류했다. 특히 대본 작업 단계에서부터 등장인물의 성별을 재규정하고 확장하는 ‘젠더 벤딩’(gender bending) 캐스팅을 통해 원작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디 이펙트’의 젠더 벤딩 공연은 이번이 세계 최초 시도다.
민 연출은 “관습적으로 우울 기제가 있거나 감정이 예민한 캐릭터의 성별은 여성에게, 개방적이고 상대방에 대한 유대가 잘 발현되는 캐릭터의 성별은 남성에게 부여되어 왔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내면세계에 대한 섬세함은 성별을 떠나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 연출은 “원작 프로덕션 측도 젠더 벤딩 제안을 기쁘게 받아 들였다”고 부연했다. 출연진 구성에 대해선 “매체를 인물의 심리와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을 선택했다”고 강조했다.
로나 역에 캐스팅된 유일한 남자 배우인 김영민은 “처음에는 젠더 밴딩 시도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배우들과 함께 많은 연구와 연습을 한 덕분에 지금은 결과물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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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 역의 이윤지(사진=레드앤블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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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 역의 김영민(사진=레드앤블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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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레드앤블루) |
임상 테스트를 감독하는 박사 로나와 토비는 항우울제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내세우며 점차 갈등을 겪고, 코니와 트리스탄은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단출한 무대에서 네 인물이 불안한 관계 속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펼쳐내며 ‘혼란스러운 감정들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트리스탄 역의 류경수는 “어떻게 하면 빈 무대를 잘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작품의 스타일과 민 연출이 추구하는 바를 잘 표현하는 것 또한 중요시했다”며 “관객들이 작품과 제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눈여겨 봐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주요 관극 포인트 중 하나는 약물 실험과 관련한 다채로운 영상을 송출하는 LED 화면이다. 민 연출은 “다양한 사건이 개입되지 않는 단순한 구조의 작품이라 타격감 있는 시청각 요소를 활용해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 이펙트’는 지난 10일 놀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개막했다. 공연은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