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다.”
코코 고프(미국·세계랭킹 2위)가 여자 테니스의 ‘GOAT’(Greatest of all time·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향한 여정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메이저대회 프랑스오픈(총상금 5635만2000유로·약 876억7000만원) 여자단식 결승에서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세계 1위)와의 2시간38분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2-1(6-7<5-7> 6-2 6-4)로 역전승을 거뒀다. 2023년 US오픈에 이어 두 번째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품은 그는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가 ‘GOAT가 돼라’고 말씀하셨다. 100% 확신할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4년생인 고프는 여자 스포츠계 최고의 스타로 꼽힌다. 열다섯 살이던 2019년,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메이저대회 윔블던 16강에서 당시 최고 스타인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코코 마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그는 2023년 US오픈을 거머쥐며 실력을 증명했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3440만달러(약 476억원)를 벌어들이며 전 세계·전 종목 여자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수입을 올렸다. 그의 스타성을 인정한 기업의 후원이 이어진 결과다.
롤랑가로스는 고프에게 아픔이 있는 무대다. 2022년 열여덟 살의 고프는 결승에서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를 만났다. “너무 긴장해서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그는 결국 2-0(1-6 3-6)으로 완패하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이번 대회가 시작된 이후 매일 아침 대회 챔피언이 되겠다는 다짐을 노트에 적었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이 우승하는 결승전 장면을 끊임없이 그렸다고 한다. 이 같은 집념 덕분인지 이번 대회에 2번 시드로 나선 고프는 단 한 세트만 내주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내달렸다.
3년 만에 다시 선 프랑스오픈 결승전, 긴장감에 압도됐던 소녀는 이제 “어두운 생각을 털어내고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고 말하는 톱랭커로 성숙했다. 우승 인터뷰에서 고프는 “사실 많은 사람이 결승에서 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인생에서 마주한다. 이전에는 경기에서 지면 세상이 끝난 줄 알았지만, 이제는 패배한 다음 날에도 해가 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결승전에서는 사발렌카의 파워와 고프의 재치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1세트에서 고프는 사발렌카의 파워 넘치는 서브와 샷에 고전했다. 끈질기게 받아넘기며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지만 타이브레이크 끝에 사발렌카에게 1세트를 내줬다. 고프는 2세트에서 기회를 잡았다. 사발렌카의 집중력이 조금 흔들린 사이, 빠른 발로 그의 공격을 방어했고, 절묘한 패싱으로 범실을 유도했다. 2세트를 따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그는 3세트 사발렌카의 두 번째 서브게임을 가져와 승기를 잡았다.
우승이 확정되자 고프는 작은 메모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한 그 메모에는 ‘2025년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겠다’는 다짐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그는 “(파리 올림픽 육상 3관왕인) 가브리엘 토머스(미국)가 이렇게 한 것을 봤다. 나도 똑같이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날 우승으로 고프는 2015년 세리나 윌리엄스 이후 10년 만에 프랑스오픈 여자단식을 제패한 미국 선수가 됐다. 스물한 살에 메이저 2승을 달성한 그는 오는 30일 개막하는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 윔블던을 정조준한다. 2002년 프랑스오픈에서 두 번째 메이저 우승을 달성한 뒤 곧바로 이어진 윔블던, US오픈을 내리 석권하며 시작된 ‘세리나의 전설’을 다시 한번 만들어낼지 테니스계의 눈길이 쏠린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