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일보는 명백한 오류를 범했다."
"문구만 자극적인 주먹구구 비난 보도 이제 그만."
참여정부 시절인 2005~2006년.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국장급 이상 관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책브리핑에 글을 올렸다. 이들은 실명 칼럼 형식으로 언론사에 '살벌한' 공격과 반론을 쏟아냈다. 당시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심지어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에 대한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2005년 10월 9일 정책브리핑에 올린 칼럼을 통해 "세수 결손이 커지는 만큼 하루빨리 철회되어야 한다"고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 '감세가 경제성장을 불러온다'는 이른바 래퍼곡선·공급경제학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경제관료들의 이 같은 맹공은 되레 역효과를 불렀다. 정부와 야당·언론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변양균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놓고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을 뿌리로 하는 국민의힘은 최근 이 같은 감세 정책을 재차 꺼내 들었다. 감세의 경제적 근거는 2005년과 비슷하다.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소득세·법인세·상속세 등의 '패키지 감세'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소득세 기본공제액을 현행 1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물가 증감분을 반영해 소득세 과표 구간을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법인세·상속세 최고세율도 인하하는 내용의 세제 개편을 추진한다고도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구체적 세제 정책을 발표하지 않고 되레 소득세 개편을 원점에서 검토하는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김 후보의 감세정책이 한꺼번에 도입될 경우 매년 수십조원의 세수 공백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김 후보는 공약문에 세수 공백 우려에 대해 "세제 개편과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성장으로 세수가 증대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 같은 분석은 '래퍼 곡선' 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이론을 설계한 미국 경제학자인 아서 래퍼 전 시카고대 교수는 1980년대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바 있다.
래퍼곡선은 일정 수준의 세율까지는 정부의 조세수입이 늘어나지만 세율이 적정 수준(최적 조세율)을 넘으면 경제 주체들의 근로·투자 의욕이 꺾여 조세수입도 감소한다는 이론이다. 적정 수준 이상의 세율 인상은 세수 감소를 불러온다고 분석했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은 현 세율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구간에 들어섰다고 본 것이다. 그만큼 세율을 낮출 경우 성장률이 뛰고,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경제학계는 래퍼 곡선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제대로 된 실증 분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래퍼 교수는 1960년대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 변동을 놓고 래퍼 곡선의 근거를 설계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정교한 실증적 분석이 많지 않다.
여기에 현재의 세율이 래퍼 곡선상 어디에 위치하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다. 변양균 전 장관도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래퍼 곡선 이론에 근거해 1980년대에 과감한 감세정책을 실시했다"며 "결국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대에서 6% 수준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감세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세수 공백을 메울 근거를 더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후보가 다음 주 공개되는 최종 공약집에서 이 같은 의구심을 불식할 근거를 제시할지 주목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