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이 대통령의 대표 브랜드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 전성기를 맞을 전망이다. 정부는 벌써부터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로 하고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짜고 있다. 경기 성남시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화폐를 본격적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지 불과 10년 남짓 지났다.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이웃 지자체의 소비를 빼앗아온 것일 뿐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재명 정부 임기 5년 동안 지역화폐의 경제 효과를 검증하는 거대한 실험이 펼쳐질 것으로 경제학계는 보고 있다.
지역 내 소비는 늘었지만
지역화폐란 지역 내 소비를 늘리고,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가 발행하는 소비쿠폰이다. 소비자는 5~1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한 지역화폐를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1900년대 초반 유럽에서 시작된 지역화폐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였다. 1998년 ‘미래화폐’를 시작으로 1999년 ‘한밭레츠’, ‘과천 아리’ 등이 최초의 지역화폐로 꼽힌다. 초창기엔 지역 시민단체 중심의 품앗이 성격이 강했던 지역화폐를 지자체의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끌어올린 이가 이 대통령이다.
2016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청년 배당, 산후조리비 등을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해 지역 내 소비를 유도했다. 성남시의 실험이 성과를 거두면서 지역화폐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문재인 대통령 때인 2020년에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제도적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까지 마련됐다. 2018년 66곳, 3714억원이던 발행 지자체 수와 발행 규모는 2024년 190곳, 20조원으로 급증했다.
지역화폐의 지역 경제 활성화에 가장 후한 평가를 내리는 곳은 경기도의 정책 연구기관인 경기연구원이다. 경기연구원은 2021년 ‘경기도 지역화폐의 소상공인 활성화 효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가전과 주방, 가구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현금 대신 지역화폐로 지원함으로써 “저축으로 전환되거나 대형 매장이나 인터넷 구매, 타 지역 매장에서 일어날 소비를 소상공인 점포로 유입시키는 ‘구입처 변경 효과’도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연구원 스스로도 “경기도 지역 내 매출 10억원 미만인 점포 단위 설문조사에 기초한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소비 데이터를 토대로 지역화폐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는 한국은행이 2020년 발표한 ‘지역사랑상품권 도입이 지역 소비에 미친 영향’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은 인천시 지역화폐 ‘인천e음’의 소비 데이터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천e음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인 2019년 1~4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0.1% 증가한 지역 내 소비가 5~12월에는 3.6% 늘었다. 한국은행은 “지역 내 소비 진작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지역판 무역장벽’
2020년 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통해 처음으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전국 규모로 분석했다. 조사 범위를 지역에서 전국으로 넓힌 연구 결과는 사뭇 달랐다. 조세연은 “2010~2018년 전국 사업체 전수조사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지역화폐 발행으로 인한 유의미한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는 관측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지역화폐가 이웃 지자체의 소비를 끌어당기는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인천e음 조사에서도 인천시민의 주된 역외 소비 지역인 서울과 경기 지역의 역외 소비율이 59.3%에서 58.9%로 줄었다. 조세연은 “지역화폐가 인근 지자체의 경제 위축을 대가로 하는 ‘인근 궁핍화 전략’을 취한다고 지적했다. 한 지역이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이웃 지역은 역내 소비 감소를 막기 위해 또 다른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역이 2024년 기준 전체 지자체의 80%까지 늘어난 이유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역내 소비 감소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초 목표인 소비 증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발행 규모의 2%로 추산되는 발행 비용과 이를 다른 정책에 쓰지 못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 등 부작용만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세연은 지역화폐에 9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2020년에 발행 부작용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26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환경에서는 재정 여건이 좋은 대도시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2020년 대전시와 세종시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대전의 인구 1인당 지역화폐 발행액과 할인율이 각각 33만9000원과 15%이던 데 비해 세종의 1인당 발행액과 할인율은 10만5000원, 10%에 그쳤다.
지역 중심 도시와 주변 지역의 격차가 훨씬 큰 다른 지역에서는 그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 낙후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지역화폐의 도입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이를 중앙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논란이 커지는 이유다.
지역 경제를 의미 있게 살찌우는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지역화폐 대부분이 학원비와 병원비에 쓰여 기존 소비를 대체하고, 사교육과 과잉 진료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올해 1~5월 서울시 지역화폐 사용액 4886억원 가운데 학원비(교육)와 병원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176억원으로 45%에 달했다. 시장가격보다 싼값을 받고서라도 지역화폐를 현금화하는‘현금깡’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조세연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도하고, 전국의 소상공인 매장에서 쓸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이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용처를 지역으로 제한하는 데 따른 소비자 후생 손실과 지자체 간 손익 왜곡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